2026년 6월 18일 목요일 05:24
월드컵 경기장서 드러난 인종차별…눈 찢기 논란이 남긴 과제
구선 기자kooblock@daum.net
이노냥 멕시코전 공식 초청…그라운드 위 혐오를 연대로 바꿀 수 있을까
![[사진=SNS 캡쳐이미지]](https://api.blockchainseoul.kr/uploads/1781760095291-505535293.webp)
지구촌 최대 축제라는 월드컵 경기장은 환호와 열정이 모이는 공간이다. 국적과 언어,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경기를 두고 웃고 울며 스포츠가 가진 힘을 확인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는 그라운드 밖 관중석에서 인류의 가장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나기도 한다.
2026 북중미 월드컵 한국과 체코의 경기 중 발생한 인플루언서 이노냥을 향한 멕시코 남성의 ‘눈 찢기’ 제스처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인종차별의 상처를 다시 건드렸다. 타인의 신체적 특징을 흉내 내고 조롱하는 행위는 결코 가벼운 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 인종을 낮춰 보는 왜곡된 시선이 몸짓으로 드러난 것이며, 피해자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명백한 폭력이다.
스포츠의 본질은 건강한 경쟁과 화합에 있다. 경기장에서는 서로 다른 나라의 선수들이 승부를 겨루지만, 그 경쟁은 상대를 모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기량과 정신을 인정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관중 역시 마찬가지다. 응원은 열정일 수 있지만, 상대와 타인을 향한 혐오는 응원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혐오 표현이 특정 개인의 돌발 행동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익명성과 군중 심리에 기대어 표출되는 차별적 행동은 쉽게 반복되고, 주변의 웃음과 방관 속에서 더 가볍게 소비된다. 누군가에게는 순간의 장난처럼 보일 수 있지만, 피해자에게는 오래 남는 상처가 된다. 특히 전 세계가 지켜보는 월드컵 무대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행위는 개인을 넘어 해당 사회의 인식 수준까지 묻게 만든다.
이번 논란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시아인을 향한 ‘눈 찢기’ 제스처는 오래전부터 국제 스포츠 현장에서 반복돼 온 대표적인 인종차별 행위다. 그때마다 사과와 징계, 재발 방지 약속이 이어졌지만, 비슷한 사건은 또다시 발생했다. 이는 제도적 대응만큼이나 일상적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국제축구연맹의 대처와 피해자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피해자인 이노냥은 오는 19일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리는 한국과 멕시코의 조별리그 경기에 공식 초청을 받아 참석한다. 마침 경기 당일은 ‘세계 혐오 표현 대응의 날’이기도 하다. 우연처럼 맞물린 일정이지만, 이번 초청은 단순한 관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개인이 겪은 차별의 상처를 조용히 덮어두는 대신, 전 세계가 주목하는 그라운드 위에서 존중과 포용의 메시지로 바꾸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다시 경기장으로 초대하는 일은 사건을 없던 일로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혐오가 발생한 공간에서 다시 연대의 의미를 세우는 과정이다. 차별의 장면을 기억하되, 그 기억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사회적 치유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한 번의 초청과 캠페인으로 인종차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혐오 표현은 제도와 처벌만으로 완전히 막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런 행동이 발생했을 때 주변이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의 외모와 출신, 언어와 문화를 조롱하는 행위가 ‘분위기’나 ‘농담’으로 용인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스포츠 단체의 역할도 더 분명해져야 한다. 인종차별 행위에 대한 징계와 교육, 현장 대응 매뉴얼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경기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혐오 표현을 단순한 관중 소동으로 치부하지 않고,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는 중대한 문제로 다뤄야 한다. 선수와 팬, 운영진 모두가 같은 기준을 공유할 때 월드컵은 진정한 축제의 이름에 가까워질 수 있다.
개인의 아픔을 사회적 공론화의 장으로 이끌어낸 용기에도 지지를 보낸다. 차별을 당한 피해자가 다시 그 공간에 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를 침묵으로 끝내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이 혐오의 문제를 마주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연대의 방식이다.
혐오라는 전염병을 막아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백신은 결국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다. 이번 멕시코전에서 울려 퍼질 차별 반대의 목소리가 단발성 선언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 안에 남아 있는 편견을 돌아보고, 스포츠가 본래 지녀야 할 존중의 가치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라운드 위에서 진정으로 퇴출되어야 할 것은 상대 팀 선수가 아니다. 국적과 인종을 이유로 누군가를 낮춰 보는 시선, 그리고 그것을 웃음으로 소비하는 우리 안의 차별과 혐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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