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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2일 금요일 12:17

월드컵이 증명한 'K-응원 경제'의 힘

구선 기자kooblock@daum.net

평일 오전 경기에도 치킨 매출 4배 급증…광화문부터 배달앱까지 소비가 움직였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한국과 체코의 경기가 열린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축구 거리응원 무대에서 시민들이 응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한국과 체코의 경기가 열린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축구 거리응원 무대에서 시민들이 응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6 북중미 월드컵 대한민국 첫 경기는 평일 오전 11시에 열렸다. 과거 월드컵 특수를 떠올리면 다소 불리한 시간대다. 밤늦게 치킨을 시키고 맥주를 곁들이며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 응원하던 전형적인 풍경과는 달랐다. 직장인은 출근해 있었고 학생들은 학교에 있었으며 자영업자에게도 오전은 가장 바쁜 시간대 중 하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치킨업계 주요 브랜드의 오전 매출은 평소보다 4배 이상 급증했다. 광화문광장에는 최대 1만8000명의 시민이 모였고 주요 외식 매장에는 단체 예약과 배달 주문이 몰렸다. 월드컵 특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간대와 소비 방식만 바뀐 채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이번 현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이른바 '낮 치맥'이다. 오전 경기라는 제약은 오히려 점심 소비와 결합했다.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을 앞당겨 경기를 시청했고 기업들은 사내 단체 관람 행사를 마련했다. 식품업계는 앱 주문 시간을 조정하고 팝업스토어와 응원 이벤트를 준비했다. 소비자는 집과 사무실, 광장과 매장 등 각자의 공간에서 응원에 참여했다.

실제로 오비맥주와 BBQ, bhc, 교촌치킨, 굽네치킨, 맥도날드, 메가MGC커피 등은 월드컵 특수 공략에 나섰다. 할인 프로모션은 물론 단체 관람 행사와 팝업스토어, 응원 메시지 이벤트, 한정판 굿즈까지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과거 스포츠 마케팅은 경기 전후 광고 노출이나 제품 판매 확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브랜드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응원 경험'을 판매한다. 치킨 한 마리와 맥주 한 잔, 한정판 컵과 할인 쿠폰은 모두 월드컵이라는 감정 소비와 연결된다. 소비자들은 경기 결과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즐기는지까지 함께 소비한다.

특히 이번 월드컵은 '집관족'과 '직장인 응원 수요'가 동시에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평일 오전이라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주문이 폭증했다는 것은 스포츠 이벤트가 더 이상 특정 시간대에만 작동하는 소비 촉진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경기 시간이 아니라 브랜드가 소비자의 일상 속으로 얼마나 빠르게 들어가느냐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소비시장은 빠르게 경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콘서트와 스포츠, 팝업스토어, 캐릭터 굿즈, 팬덤 소비 등 감정적 만족을 제공하는 경험형 소비는 경기 둔화 국면에서도 비교적 강한 회복력을 보여왔다. 이번 월드컵 역시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집단적 감정을 자극하는 거대한 경험 플랫폼으로 작동했다.

이는 최근 소비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고물가와 경기 둔화로 소비자들은 지출에 더욱 신중해졌지만 자신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경험에는 여전히 지갑을 연다. 월드컵과 올림픽, 국가대표 경기처럼 공동체적 감정이 작동하는 이벤트는 소비 위축 국면에서도 예외적인 수요를 만들어낸다. 기업 입장에서는 가격 할인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강력한 소비 동력이 되는 셈이다.

물론 월드컵 특수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첫 경기 역전승이 만들어낸 열기는 강력했지만 향후 대표팀 성적과 경기 일정에 따라 소비 열기는 달라질 수 있다. 결국 기업들의 과제는 일회성 응원 수요를 반복 가능한 고객 경험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앱 가입과 멤버십 확대, 브랜드 체험, 재방문 소비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월드컵 특수는 하루짜리 이벤트에 그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월드컵이 보여준 장면은 분명하다. 소비자는 여전히 함께 모이고 응원하며 먹고 즐긴다. 다만 그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밤의 치맥은 낮의 치맥으로 바뀌었고 거리응원은 광장뿐 아니라 사무실과 배달앱, 기업 강당과 팝업스토어까지 확장됐다.

이번 월드컵은 소비가 반드시 저녁이나 주말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기업이 소비자의 감정과 일상을 연결하는 데 성공한다면 평일 오전 11시도 새로운 황금시간대가 될 수 있다.

경기장은 광화문에 있었지만 소비는 치킨집과 배달앱, 편의점과 사내 식당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월드컵이 증명한 것은 단순한 축구 열기가 아니다. 불황과 고물가 속에서도 움직이는 한국 소비시장의 독특한 에너지, 바로 'K-응원 경제'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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