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6일 금요일 13:50
배춧값 반토막에 수확 포기…농민들이 밭 갈아엎는 이유
김보영 기자mari@gmail.com
소비자 부담 줄었지만 농가 수익성 악화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 가격이 1년 전보다 절반 가까이 떨어지면서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소비자에게는 반가운 가격 하락이지만 생산비조차 회수하기 어려워진 농민들은 수확 포기에 나서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정성껏 키운 배추가 출하되지 못한 채 트랙터에 갈려 나가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생산량 증가와 소비 부진이 겹치면서 배추 가격이 급락한 결과다.
6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4일 배추 상품 1포기 평균 도매가격은 1,597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3,253원보다 50.9% 하락한 수준이다.
한 달 전 3,617원과 비교하면 하락률은 55.8%에 달한다. 평년 가격인 2,781원보다도 42.6% 낮다.
배추 한 포기 1,597원…한 달 만에 가격 55.8% 급락
배추 가격 급락은 가을배추 출하 확대와 소비 부진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올해 가을배추 생산량은 약 121만4,000톤으로 추산됐다. 지난해보다 18.5% 증가한 규모다.
작황 개선으로 생산량이 늘어난 가운데 10월 출하가 지연된 물량까지 시장에 공급되면서 가격 하락 압력이 커졌다.
11월 배추 출하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3% 증가할 전망이다.
공급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소비 회복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산지 가격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배추뿐 아니라 김장 재료인 무 가격도 하락했다. 지난 4일 무 상품 1개 평균 도매가격은 798원으로 지난해보다 23.9% 떨어졌다.
배추밭 갈아엎은 농민들…수확해도 손해
배추 가격 급락으로 농가에서는 수확 포기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북도연맹 소속 농민들은 지난 5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에서 배추밭 약 2,000㎡를 트랙터로 갈아엎었다.
가격 폭락에 따른 농가 피해를 알리고 정부에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한 행동이다.
농민들이 수확을 포기하는 이유는 단순히 판매가격이 낮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배추 출하 과정에는 수확 인건비와 포장비, 운송비 등이 추가로 발생한다. 판매수입이 이러한 비용에 미치지 못하면 출하할수록 손실이 커질 수 있다.
특히 비료와 농자재, 인건비 등 생산비 부담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도매가격까지 급락하면서 농가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
농민들은 일시적인 할인행사보다 공급과잉에 대응할 근본적인 수급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소비자는 저렴해졌는데…농민 소득은 감소
배추 도매가격 하락은 소비자 장바구니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4일 배추 1포기 평균 소매가격은 3,768원으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38.4% 하락한 수준이다.
지난달까지 4,000원을 웃돌던 배추 가격이 이달 들어 3,000원대로 내려오면서 김장 비용 부담도 일부 완화될 전망이다.
다만 소매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8% 높아 도매가격과 같은 수준의 연간 하락세가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이처럼 소비자 가격과 산지 가격 사이에는 차이가 발생한다.
농산물 유통 과정에서 운송비와 보관비, 인건비 등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매가격이 급락하더라도 소비자 판매가격에는 하락 폭이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소비자에게는 물가 안정 효과가 있지만 농민에게는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상반된 상황이다.
김장 수요 줄고 수입김치 증가…소비 회복 불투명
배추 가격 하락 배경에는 김장 문화 변화도 자리하고 있다.
가정에서 직접 김장하는 대신 완제품 김치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배추 수요 회복에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가 전국 1,000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올해 김장 규모가 지난해와 비슷할 것이라는 응답이 67.8%였다.
김장 규모를 줄이겠다는 응답도 16.3%에 달했다.
김장 수요가 크게 늘어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배추 공급량은 증가하면서 가격 하락 압력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수입김치 증가도 국내 배추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올해 1~9월 김치 수입량은 약 25만742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7% 증가했다. 수입액은 약 1억6,080만 달러로 12.0% 늘었다.
수입김치는 주로 외식업체와 급식시설, 가공식품 원료 등에서 사용된다.
다만 배추 가격 급락 원인을 수입김치 증가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올해는 생산량 증가와 출하 집중, 소비 부진이 동시에 나타난 상황이다.
정부 640억 원 할인 지원…배추 1만 톤 수매
정부도 김장철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한 대책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3일 김장재료 수급안정대책을 발표하고 총 640억 원 규모의 할인행사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소비 촉진과 장바구니 부담 완화가 주요 목적이다.
배추와 무의 공급과잉에 대응하기 위한 수매·비축 계획도 마련했다.
정부는 11월 상순부터 배추 1만 톤과 무 3,000톤을 수매·비축해 시장 공급량 조절에 나설 방침이다.
공급과잉이 지속될 경우 산지 일시 출하 정지 등 추가 조치도 검토할 계획이다.
다만 농민들은 수매와 비축만으로 가격 하락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공급과잉이 예상되는 시점부터 선제적으로 물량을 조절하고 산지 폐기 지원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해남 농민들도 반발…선제적 시장 격리 요구
전국 최대 겨울배추 주산지인 전남 해남에서도 농민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해남 지역 농민들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고 배추 가격 폭락에 대응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농민들은 공급과잉이 발생한 이후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전 수급 조절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쌀의 수급조절용 벼 제도와 유사한 선제적 시장 격리 방안도 요구했다.
유통구조 개선 역시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중간 유통 단계의 불합리한 거래 관행을 개선하고 농민에게 적정한 판매수입이 돌아갈 수 있도록 공공형 유통 플랫폼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산지 폐기 지원 단가 현실화와 생산비 보장 대책 마련도 요구하고 있다.
배춧값 폭락 반복되나…농산물 수급 관리 시험대
배추 가격 급락은 단순한 일시적 가격 변동을 넘어 농산물 수급 관리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농산물은 기상 여건과 재배면적, 출하 시기 등에 따라 공급량이 크게 달라진다.
생산량이 부족하면 가격이 급등하고 반대로 공급이 집중되면 가격이 급락하는 특성이 있다.
문제는 가격 변동에 따른 위험이 농가 소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특히 가격 하락으로 수확을 포기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농가의 다음 작기 재배 의욕까지 약화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생산 기반이 위축되면 향후 공급 부족과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단기적인 가격 안정뿐 아니라 생산량 예측과 출하 조절, 농가 소득 보호를 함께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장철을 앞두고 소비자 부담은 줄었지만 농민들의 생계 불안은 커지고 있다. 정부의 수급 안정 대책이 배추 가격 회복과 농가 피해 완화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Copyrights ⓒ BLOCKCHAINSEOUL.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