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서울

블록체인서울

뉴스

2026년 6월 11일 목요일 11:48

선거의 신뢰는 어떻게 흔들리는가

구선 기자kooblock@daum.net

3% 규정은 있었지만 현장은 준비되지 않았다

선거의 신뢰는 어떻게 흔들리는가

선거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했다는 말은 단순한 행정 착오로만 들리지 않는다. 투표소에 나온 유권자에게 투표용지는 곧 권리의 물리적 형태다. 그 종이 한 장이 있어야 주권을 행사할 수 있고, 그 종이 한 장이 제때 준비되지 않으면 선거의 신뢰는 그 순간부터 흔들린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조사 중인 진상규명위원회가 11일 밝힌 내용은 그래서 가볍지 않다. 공직선거 절차 사무편람에는 일련번호가 없는 예비용 무번호 투표용지를 선거인수의 3% 내외로 가산해 인쇄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송파구에는 규정상 약 1만7천매가 교부돼야 했지만 실제로는 2천매만 배부된 것으로 파악됐다. 규정과 현실 사이에 1만5천매의 간극이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단순히 숫자가 부족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부족 사태가 발생했을 때 현장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가 사실상 부재했다는 점이다.

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무번호 투표용지에 일련번호를 어떻게 작성할지에 대한 매뉴얼이 없어 현장에서 혼란과 지연이 발생했다. 투표용지가 모자라는 상황 자체도 문제였지만, 그 상황을 수습할 절차조차 명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선거 행정은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는 그 민낯이 드러난다.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선거에서는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받고 기표한 뒤 투표함에 넣는 과정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 당연함은 수많은 사전 준비와 세밀한 절차 위에서만 유지된다. 이번 사태는 그 ‘당연함’을 떠받치는 시스템이 생각보다 허술했을 수 있다는 경고다.

특히 무번호 투표용지는 말 그대로 비상 상황에 대비한 장치다. 예비 장치는 평소에는 쓰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쓰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준비를 줄여도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거처럼 신뢰가 핵심인 영역에서는 예비 절차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마련돼 있어야 한다. 한 투표소에서라도 유권자가 “내가 제대로 투표할 수 있는가”라는 의심을 품는 순간, 문제는 해당 지역의 행정 착오를 넘어 선거 전체의 신뢰 문제로 번진다.

이번 사안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규정은 있었지만 실행은 달랐다’는 점이다. 3% 내외 가산 인쇄라는 기준이 있었음에도 실제 교부량은 그에 크게 못 미쳤다.

서울시 선관위가 관내 구·시·군 선관위에 2천매 인쇄 지침을 내렸다는 설명도 나왔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현장 담당자 몇 명의 실수로만 정리하기 어렵다. 규정과 지침, 중앙과 지역, 사전 판단과 현장 대응 사이의 연결 구조 전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선거 실무는 복잡하다. 선거 때마다 투표율, 선거인 수, 투표소별 상황, 인쇄 물량, 보관과 이송, 현장 인력 배치가 맞물린다. 하지만 복잡하다는 이유가 기본 원칙을 약화시키는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선거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유권자가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아무런 불안 없이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진상규명위원장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예견한 매뉴얼 자체가 없었다”고 말한 대목은 뼈아프다. 행정은 예외 상황을 관리하는 능력에서 신뢰를 얻는다. 평상시에는 누구나 절차를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을 때 누구에게 보고하고, 어떤 물량을 어디서 확보하며, 현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안내하고 처리할지 정해져 있어야 한다. 그것이 매뉴얼이고, 그것이 제도다.

물론 선거 현장에서 일하는 간사와 서기 상당수는 일시적으로 차출된 인력이다. 이들에게 모든 판단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오히려 이번 사태는 현장 인력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를 보여준다. 선거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긴급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만들려면, 매뉴얼은 더 구체적이어야 하고 교육은 더 반복돼야 하며 지휘체계는 더 단순해야 한다.

투표용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투표용지가 부족했다는 사건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1만7천매가 필요했는데 2천매만 준비됐다는 사실은 행정 편의와 위험 관리 사이에서 무엇이 우선돼야 하는지 다시 묻게 만든다.

이번 진상규명은 책임자 몇 명을 찾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왜 규정과 다르게 물량이 산정됐는지, 왜 부족 가능성을 사전에 충분히 점검하지 못했는지, 왜 현장 대응 매뉴얼이 없었는지, 왜 혼란이 신속하게 수습되지 못했는지까지 따져야 한다. 그래야 같은 문제가 다음 선거에서 반복되지 않는다.

선거의 신뢰는 거창한 구호로 지켜지지 않는다. 투표용지가 충분히 준비돼 있고,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대응할 수 있으며, 현장 인력이 같은 기준으로 움직일 때 지켜진다. 민주주의는 결국 절차의 누적이다. 그 절차가 흔들리면 결과에 대한 신뢰도 함께 흔들린다.

이번 사태가 남긴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투표가 당연히 가능하다고 믿어도 되는가. 그리고 그 믿음을 뒷받침할 만큼 선거 행정은 충분히 준비돼 있는가.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Copyrights ⓒ BLOCKCHAINSEOUL.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규제#심층분석
목록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