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0일 일요일 22:31
"약국 손님이 앱으로 간다"…약 배송 확대에 약사 1만명 거리로
구선 기자kooblock@daum.net
환자 편의·안전 넘어 처방전·수수료·데이터 주도권까지…플랫폼이 약국의 '입구' 될까

약 하나를 받기 위해 병원과 약국을 각각 찾아가야 하는 불편을 줄일 수 있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반길 만하다.
특히 거동이 불편하거나 의료기관·약국 접근성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비대면진료와 의약품 배송은 단순한 편리함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정부도 이런 접근성 문제를 이유로 비대면진료 후 의약품을 집에서 받을 수 있는 대상을 넓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12월 24일 비대면진료가 제도화되면 우선 섬·벽지 거주자와 장기요양 수급자, 장애인, 감염병·희귀질환자 등 일부 환자가 의약품을 비대면으로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전체 비대면진료 환자로 배송 대상을 확대하기 위한 의료법·약사법 개정 논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약사사회의 시선은 전혀 다르다.
대한약사회는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에서 '국민건강·건강보험 수호 전국 약사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약사회 측은 오후 2시30분 기준 참가자가 1만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들은 약물 오남용과 의약품 변질·오배송, 개인정보 관리, 건강보험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정부의 약 배송 전면 확대에 반대했다.
약사회는 지난달 정부가 확대 방침을 내놓은 직후부터 같은 입장을 유지해왔다.
특히 탈모약·다이어트약·여드름약 등 비급여 의약품의 처방과 배송이 지나치게 쉬워질 경우 의료쇼핑과 약물 오남용을 부추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안전장치와 관련 통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를 먼저 넓혀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번 갈등을 '약사의 안전 우려 대 소비자의 편리함'으로만 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환자가 약국 찾던 시장에서 플랫폼이 약국을 골라주는 시장으로
경제적으로 더 큰 변화는 의약품을 받는 경로가 달라진다는 데 있다.
지금은 환자가 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뒤 집이나 병원 근처 약국을 직접 찾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약국 입장에서는 어느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지, 주변에 어떤 의료기관이 있는지, 지역 단골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가 매출에 영향을 미친다.
약 배송이 보편화되면 이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환자가 비대면진료 앱에서 병원을 찾고 진료를 받은 뒤, 같은 플랫폼에서 처방전을 받을 약국을 확인하고 집으로 약을 배송받는 방식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환자와 약국 사이에 새로운 '입구'가 생긴다.
바로 플랫폼이다.
정부는 이미 비대면진료 중개업자에게 약국별 의약품 구매·조제 여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환자가 처방받은 약을 보유한 약국을 더 빨리 찾도록 한다는 취지다. 정부는 정보 제공 주기도 더 짧게 가져가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훨씬 편리해진다.
반대로 약국 입장에서는 앞으로 '어디에 있느냐' 못지않게 플랫폼에서 어떤 약국이 노출되고 선택되느냐가 중요해질 수 있다.
처방전이 어디로 몰릴까…약국 매출에도 직접 영향
약 배송 확대는 결국 약국 사이에서 처방전이 배분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현재는 환자가 가까운 약국을 직접 방문하기 때문에 처방전이 지역 단위로 비교적 분산되는 구조다.
그러나 배송 거리가 넓어지고 플랫폼을 통해 약국을 선택하는 이용자가 늘어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배송 시스템을 잘 갖추거나 많은 품목을 확보한 약국, 플랫폼을 통해 환자를 많이 유치하는 약국으로 처방전이 집중될 가능성이 생긴다.
반대로 지금까지 병원 주변이나 주거지역이라는 위치를 기반으로 영업해온 동네 약국은 기존 고객 일부를 잃을 수도 있다.
정부 역시 이런 시장 집중 가능성을 의식하고 있다.
정부는 12월 제도 시행에 맞춰 가까운 동네 약국을 중심으로 약 배송을 허용하고 비대면진료만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약국은 금지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약사회 역시 이번 정책과 경제적으로 무관한 제3자는 아니다.
약사회가 공식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환자 안전과 오남용, 건강보험, 개인정보 문제지만, 약 배송 확대가 기존 지역 약국의 영업 구조와 처방전 유입 경로를 바꿀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해관계다.
이를 단순히 '밥그릇 지키기'라고 단정하기도 어렵지만, 반대로 약국의 매출과 시장 지위가 전혀 걸려 있지 않다고 보는 것도 시장구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배달앱처럼 될까…수수료와 노출 경쟁도 변수
플랫폼 경제에서는 소비자와 판매자를 누가 연결하느냐가 중요하다.
음식점에 직접 전화하던 소비자가 배달앱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음식점들은 앱의 검색 결과와 광고, 수수료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됐다.
비대면진료와 약 배송도 일정 부분 비슷한 구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현재 의약품 배송 플랫폼의 향후 수수료나 광고 체계가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을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플랫폼이 환자를 약국으로 보내는 핵심 통로가 된다면 어떤 약국을 먼저 보여주는지, 약국이 플랫폼에 어떤 비용을 부담하는지, 특정 약국으로 환자가 몰리지 않도록 어떤 기준을 둘 것인지가 새로운 경쟁정책 문제가 될 수 있다.
의약품이라는 특성 때문에 일반 배달시장보다 이해관계는 더 복잡하다.
환자가 가격만 보고 약국을 고르는 상품시장이 아니고, 의사가 처방한 의약품을 약사가 조제하는 의료체계이기 때문이다.
국회도 플랫폼의 영향력 확대에 일정한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지난 8월 국회를 통과한 약사법 개정안은 비대면진료 중개업자가 의약품 도매업에 진출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환자를 약국에 연결하는 플랫폼이 의약품 유통까지 동시에 장악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을 차단한다는 취지다. 대한약사회는 해당 개정안 통과를 환영했다.
플랫폼에는 또 하나의 자산이 있다…'데이터'
돈의 흐름만큼 중요한 것이 데이터다.
비대면진료 플랫폼에는 어떤 환자가 어떤 진료과목을 이용하는지, 어떤 처방을 받았는지, 어떤 지역에서 어떤 약국을 이용하는지와 관련된 정보가 오갈 수 있다.
의료정보는 일반적인 구매정보보다 훨씬 민감하다.
대한약사회가 플랫폼 중심의 비대면진료 체계를 반대하면서 개인정보와 보안 문제를 함께 제기하는 이유다. 약사회는 20일 집회에서도 개인 의료정보가 민간 기업에 축적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데이터를 활용해 더 편리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반면 환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의료정보가 어디까지 전달되고 얼마나 오래 보관되며 어떤 목적으로 활용되는지 알 권리가 있다.
약 배송 논쟁이 단순한 택배 문제가 아닌 이유다.
소비자들은 "비대면진료라면 약도 받아야"
약 배송 확대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분명하다.
한국소비자연맹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소비자시민모임,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지난 9일 비대면진료가 의약품 수령까지 이어져야 한다며 의료·의약품 접근권 보장을 요구했다.
비대면으로 의사 진료를 받았는데 결국 처방약을 받으러 약국까지 직접 가야 한다면 비대면진료의 장점이 반쪽에 그친다는 논리다.
우리나라는 현재 OECD 국가 가운데 의약품 배송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유일한 국가로 파악된다. 다만 해외에서 허용한다는 사실만으로 국내에서도 같은 방식이 적절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각국의 의료·약국제도 차이도 함께 살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환자·소비자단체도 플랫폼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 단체 역시 의약품 오남용을 막을 안전한 배송체계와 플랫폼의 불공정한 유인·알선 행위를 제한할 규제가 필요하다고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다.
결국 싸움의 핵심은 '배송'보다 누가 시장을 움직이느냐
약 배송이 확대되면 환자는 편해질 수 있다.
시간과 교통비를 아끼고 거동이 어려운 사람의 의료 접근성도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다른 변화도 동시에 일어난다.
환자가 직접 병원과 약국을 찾던 구조에 플랫폼과 배송업체가 들어온다. 약국의 경쟁 기준이 위치 중심에서 플랫폼 접근성과 배송 역량으로 일부 이동할 수 있고, 처방전이 특정 사업자에 집중되는 문제도 나타날 수 있다.
향후 플랫폼의 수수료나 광고·노출 정책이 새로운 비용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살펴봐야 한다.
반대로 기존 시장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새로운 서비스를 지나치게 제한할 경우 환자가 얻을 수 있는 편익과 경쟁 효과가 줄어들 수도 있다.
그래서 약 배송 논쟁에서 살펴봐야 할 것은 '약사와 플랫폼 가운데 누가 옳으냐'만이 아니다.
누가 환자와 약국을 연결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누가 돈을 벌고 어떤 사업자가 기존 수익을 잃을 수 있는지, 플랫폼에 얼마나 많은 시장 지배력을 허용할 것인지, 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지를 함께 따져봐야 한다.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도 결국 여기에 있다.
비대면진료와 약 배송이라는 새로운 유통 경로를 열면서 환자의 선택권은 넓히되, 의약품 안전과 개인정보를 지키고 플랫폼과 약국 사이에서 새로운 불공정 거래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장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약 한 봉지를 집까지 보내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서는 동네 약국 중심이었던 의약품 시장의 '입구'를 앞으로 누가 쥘 것인가를 둘러싼 구조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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