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5일 목요일 03:52
[기자수첩] “특전사가 런웨이에 설 때인가”…군 본분 잊은 황당한 '모델 워킹' 교육 논란
구선 기자kooblock@daum.net
적진 침투 훈련 대신 패션모델 걸음걸이…장병 인성교육이라는 군의 궁색한 해명
![[사진=박충권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https://api.blockchainseoul.kr/uploads/1793850616572-811355317.webp)
북한은 미사일을 쏘고, 대한민국 특전사는 모델 워킹을 배웠다. 이 황당한 대비가 지금 우리 군의 현실이다.
적진 침투와 특수작전을 수행해야 할 정예 장병들이 군 체육관에서 패션모델의 걸음걸이를 배우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은 국민에게 실망을 넘어 허탈함을 안겼다.
지난달 29일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에서 열린 'K워킹 퍼포먼스 밀리터리 페스티벌'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공개된 영상에는 하이힐을 신은 여성 모델들이 장병들 앞에서 워킹을 시연하고, 특전사 대원들이 이를 따라 하며 모델처럼 걷는 장면이 담겼다.
물론 군인이라고 문화행사를 즐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장병들에게도 휴식과 정서적 안정, 다양한 경험은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교육의 목적과 내용, 그리고 그것이 진행된 장소다. 일반 문화체험 행사도 아니고 대한민국 최정예 전투부대에서 군 기본자세를 확립한다며 패션모델의 워킹을 가르쳤다는 설명을 과연 어느 국민이 쉽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특전사는 일반 부대와 임무부터 다르다. 유사시 적진 깊숙이 침투해 핵심 시설을 타격하고, 정찰과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부대다.
극한의 체력과 강인한 정신력, 고도의 전술 능력을 요구받는 장병들에게 필요한 것은 전장에서 살아남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실전 역량이다. 무대 위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걷고 멋진 자세를 취하는지가 아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육군의 해명이다. 육군은 장병들이 바른 자세와 걸음걸이를 익혀 군 기본자세를 확립하도록 해당 프로그램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군인의 기본자세를 배우는 데 패션모델의 워킹 교육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군에는 이미 제식훈련과 체력단련, 전투기술 교육 등 군인의 자세와 기강을 확립하기 위한 체계가 마련돼 있다.
육군 스스로도 교육 내용이 부대 특성과 장병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고 사전 검토가 미흡했다며 부적절성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교육을 누가 제안했고, 누가 승인했으며, 어떤 기준으로 특전사 장병들에게 적합하다고 판단했는가. 군의 교육 프로그램은 지휘관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시험하는 무대가 아니다.
이번 논란을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행사 하나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군 조직에서 장병들은 상부의 지시를 쉽게 거부하기 어렵다. 자신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행사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장병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 책임은 교육의 적절성을 판단하고 이를 시행하도록 결정한 지휘체계에 물어야 한다.
특히 제1공수특전여단은 2024년 12·3 비상계엄 당시 병력이 동원됐던 부대다. 계엄 사태 이후 군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장병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노력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방법이 군의 정체성을 흐리거나 장병들이 스스로의 임무를 가볍게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지휘 명령에 대한 책임을 바로잡는 일과 정예 전투부대로서의 전문성을 유지하는 일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일 이번 행사를 강하게 비판하며 군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정치권의 비판을 모두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이번 교육이 특전사 장병들에게 적절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충분히 타당하다. 안보 문제를 정쟁으로만 치부하며 넘어갈 일이 아니다.
군의 인성교육 자체를 문제 삼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인성교육은 동료에 대한 신뢰, 전우애, 책임감, 생명 존중, 올바른 지휘관계와 같은 가치에서 출발해야 한다. 장병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이해하고 자부심을 느끼도록 만드는 교육이어야 한다. 모델처럼 걷는 법을 배운다고 군인의 품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장병들은 보여주기식 행사보다 제대로 된 훈련 여건과 장비, 합당한 처우, 신뢰할 수 있는 지휘관을 원할 것이다. 정작 필요한 지원은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면서 현장과 동떨어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면 이는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지휘 판단의 문제다.
국민이 군에 기대하는 것은 화려한 퍼포먼스가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 흔들림 없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강한 군대다. 특히 대한민국의 안보 현실에서 특전사의 전투 준비태세는 그 어떤 보여주기식 행사보다 우선해야 한다.
군은 이번 사안을 일회성 논란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교육의 기획과 승인 과정, 예산 집행의 적절성, 장병들의 실제 참여 의사 등을 점검하고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선 장병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교육의 실효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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