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4일 일요일 18:20
한국경제는 지금 ‘반쪽짜리 호황’이다
구선 기자kooblock@daum.net
성장률은 50년 만에 뛰었지만 청년 일자리·서민 가계·환율·물가는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한국 경제를 두고 요즘 “좋다”고 말하기도, “나쁘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숫자만 보면 분명히 좋다. 1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보다 10.5% 늘었다. 1976년 이후 50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실질 성장률도 1.8%를 기록했고, 국민총소득(GNI)도 기록적으로 증가했다.
여기에 코스피는 사상 처음 8,000선을 넘어섰다. 반도체 수출은 살아났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 경제의 회복을 상징하는 대표주가 됐다. 경상수지 흑자도 사상 최대 규모다. 겉으로만 보면 한국 경제는 다시 고성장 궤도에 올라선 듯하다.
문제는 이 호황이 너무 좁은 곳에서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성장은 반도체가 이끌고, 증시는 일부 대형주가 끌어올리고, 소득 증가는 상위 계층과 특정 산업에 더 집중된다. 반면 고용시장은 식고 있고, 청년층은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졌으며, 저소득층 가계는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 한국 경제가 좋아졌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맞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체감되지 않는 이유다.
가장 뚜렷한 괴리는 고용에서 나타난다. 5월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4만명 줄었다. 17개월 만의 감소 전환이다. 특히 제조업 취업자가 14만명이나 줄었다. 반도체가 수출과 성장을 이끌고 있지만, 정작 반도체 산업은 많은 사람을 새로 고용하는 산업이 아니다. 전체 제조업 취업자 중 반도체 업종 비중은 4% 수준에 그친다.
이 말은 곧 지금의 성장이 ‘고용 없는 성장’에 가깝다는 뜻이다. 공장은 잘 돌아가고 수출액은 늘지만, 그 성장이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는 힘은 약하다. 과거처럼 수출이 늘면 공장 고용이 늘고, 임금이 오르고, 소비가 살아나는 전통적 성장 공식이 더는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청년층은 더 어렵다. 20대 취업자는 43개월 연속 감소했다. 30∼34세 실업자는 10개월째 늘었다. 기업들은 신입보다 경력직을 선호하고, 정기 공채보다 수시 채용을 확대한다. 노동시장에 처음 들어가려는 청년들에게는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사회 초년생이 들어갈 자리는 줄어드는 이상한 호황이다.
소득 분배도 불안하다. 전체 가구 월평균 소득은 늘었지만, 하위 10%인 1분위 가구 소득은 오히려 줄었다. 1분위 가구의 월 적자액은 82만원 수준으로, 2019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컸다. 반면 상위 10% 가구는 월 흑자액이 574만원에 육박했다.
한쪽에서는 반도체 성과급과 주식 상승으로 자산과 소득이 불어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매달 적자를 내는 구조다. 이것이 지금 한국 경제의 불편한 단면이다. 평균은 좋아졌지만, 평균 아래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증시 호황도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니다. 코스피가 8,000선을 넘은 것은 분명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나 그 상승의 중심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두 회사가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었다. 1년 전 20%대였던 비중이 단기간에 두 배 이상 커졌다.
시장 전체가 고르게 좋아진 것이 아니라, 반도체 대형주가 지수를 끌어올린 셈이다. 지수는 사상 최고치인데 내 계좌는 별로 오르지 않았다는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스피 8,000이라는 숫자는 화려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쏠림이 심하다.
더 위험한 것은 변동성이다.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VKOSPI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을 넘어섰다. 주가가 오르는데 공포지수도 함께 뛰는 시장은 건강한 상승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투자자들이 환호하면서도 동시에 불안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장세에서 빚투는 더 위험해진다. 지난달 예금은행 가계대출은 6조9천억원 늘었고, 이 가운데 마이너스통장과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 증가분이 3조7천억원에 달했다. 증시 급등을 따라잡기 위해 빚을 내 투자한 자금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는 반대매매 급증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 달간 반대매매로 처분된 주식 규모는 약 1조1천986억원이었다. 직전 한 달보다 319% 넘게 증가했다.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찍는 와중에도 누군가는 빚을 갚지 못해 주식을 강제로 팔리고 있는 것이다. 호황장 한가운데서 이미 손실을 확정당하는 투자자가 속출하고 있다.
환율도 또 다른 경고등이다. 올해 1∼4월 경상수지 흑자는 사상 최대 규모였지만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를 웃돌고 있다. 보통 외화를 많이 벌면 원화가 강세를 보일 것 같지만, 현실은 반대다. 중동 정세 불안, 외국인의 국내 주식 대규모 매도,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맞물리면서 원화는 약세 압력을 받고 있다.
환율 상승은 곧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로 26개월 만에 3%대를 넘어섰다. 국제유가 상승에 환율 부담까지 겹치면 수입물가가 오르고, 이는 식료품·에너지·생활비 전반으로 번진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소득에서 식비와 에너지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물가 상승은 결국 가장 약한 곳부터 때린다.
지금 한국 경제의 핵심 문제는 성장률이 낮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장률은 높다. 문제는 성장의 과실이 고르게 퍼지지 않고, 성장의 그림자가 너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가 좋아도 청년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 코스피가 올라도 빚투 투자자는 반대매매를 당한다.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여도 환율은 치솟는다. 국민총소득이 늘어도 하위 10% 가구는 매달 82만원 적자를 낸다. 이것이 지금 한국 경제가 직면한 모순이다.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도 이 지점에 맞춰져야 한다. 성장률 전망치를 몇 %로 올릴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성장이 누구의 삶을 실제로 나아지게 하느냐다. 청년 고용, 저소득층 생계, 자영업자 부담, 환율·물가 안정, 금융시장 과열 관리가 함께 다뤄지지 않으면 고성장은 숫자로만 남을 수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물가, 고용 등에 대해 각별한 경각심을 유지하면서 중동전쟁 영향을 최소화하고 민생안정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그 경각심이다. 8천피의 환호에 취해 고용과 민생의 경고음을 놓치면, 고성장은 오래가지 못한다.
한국 경제는 지금 좋아지고 있는 것이 맞다. 그러나 모두에게 좋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차이를 줄이지 못한다면 50년 만의 고성장은 ‘반쪽짜리 호황’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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