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서울

블록체인서울

뉴스

2026년 6월 14일 일요일 18:36

숙련공 8명 몫을 로봇 1대가 했다…제조업 뒤흔드는 ‘피지컬 AI’

구선 기자kooblock@daum.net

제철소 롤러 교체부터 조선소 용접까지 자동화 확산…러그 생산량 수작업 대비 87.5% 증가

모바일 자율로봇이 벨트 컨베이어 롤러를 교체하는 모습 [사진=한국로봇융합연구원]
모바일 자율로봇이 벨트 컨베이어 롤러를 교체하는 모습 [사진=한국로봇융합연구원]

사람 8명이 매달리던 제철소 고난도 정비 작업을 로봇 1대가 대신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인공지능(AI)이 데이터 분석을 넘어 실제 제조 현장에서 장비를 판단하고 움직이는 ‘피지컬 AI’가 전통 산업의 작업 방식을 바꾸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은 경북 포항 안전로봇실증센터에서 제철소 벨트 컨베이어 롤러 교체 작업을 수행하는 모바일 자율로봇을 공개했다.

벨트 컨베이어는 제철소에서 철광석 등 원료를 고로로 운반하는 핵심 설비다. 포항·광양 제철소에 설치된 벨트 컨베이어 길이만 약 700㎞에 달한다. 하단 롤러가 고장 나면 마찰열로 화재가 발생할 수 있고, 좁은 공간에서 사람이 직접 교체 작업을 하다 끼임 사고가 발생할 위험도 컸다.

기존에는 숙련공이 직접 현장을 돌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고장 부위를 찾아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로봇은 이상 소음을 감지한 뒤 고장 난 롤러를 스스로 찾아 교체했다. 과거 작업자 8명이 필요했던 고난도 작업을 로봇 1대가 수행한 것이다.

이 기술은 산업통상부의 ‘M.AX-AI 팩토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발됐다. 포스코와 한국로봇융합연구원 등 10개 산·학·연 기관이 참여했고, 연구개발비 약 175억원이 투입됐다.

연구팀은 베테랑 숙련공의 경험을 로봇에 학습시키기 위해 포항·광양 제철소 현장에서 수집한 1만9천여건의 음향 데이터를 활용했다. 숙련공이 소리만 듣고 이상 여부를 판단하던 암묵지를 AI가 학습한 셈이다.

최용준 포스코 연구위원은 “시멘트 공장, 화력발전소까지 포함하면 포항에서만 1년에 거의 1만개의 롤러가 교체된다”며 “다른 산업에도 이 기술을 이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지컬 AI는 단순 정비를 넘어 위험 감시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포항제철소 2고로에서는 고온가스와 폭발 위험 때문에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풍구 점검에 사족보행 로봇이 투입됐다.

풍구는 고로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는 통로다. 내부 온도가 균일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실시간 온도 확인이 중요하다. 이 로봇은 최대 영상 55도의 열기를 견디며 온도를 측정하고, 스스로 충전하며 임무를 수행한다.

조선업 현장에서도 피지컬 AI 도입이 속도를 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울산 조선소에서 레일형 협동로봇 시스템을 활용해 용접 공정을 자동화하고 있다.

기존 협동로봇은 도면과 연동되지 않아 작업자가 용접 조건을 직접 입력해야 했다. 이 때문에 작업자 1명이 로봇 2대 정도를 다루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새 시스템은 설계 도면 정보와 연동돼 로봇이 용접 조건을 자동 계산하고 레일을 따라 이동하며 작업한다.

이제 작업자 1명이 최대 6대의 로봇을 동시에 가동할 수 있다. 숙련 용접공에게 의존하던 작업이 로봇 중심의 자동화 공정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윤대규 HD현대중공업 상무는 “고숙련자가 하는 것보다 품질이 균일하게 잘 나오고, 그라인딩으로 갈아내는 사상 작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용접 상태가 깨끗하다”고 설명했다.

HD현대중공업은 선박 블록 인양에 쓰이는 핵심 부재인 러그 생산 공정도 로봇 기반 자율제조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러그는 조선소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한 정형 부품으로, 과거에는 6명이 하루 100개를 간신히 만들던 노동집약적 공정이었다.

그러나 6개월간의 실증을 거쳐 전 공정을 로봇이 맡게 되면서 생산량은 기존 수작업 대비 87.5% 늘었다. 현장 관리자는 디지털 트윈 화면을 통해 생산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윤 상무는 “조선업은 배마다 형태가 다르고 부재도 제각각이어서 자동차, 반도체, 전자산업과 달리 자동화가 쉽지 않았다”며 “현재는 정형 부재 중심이지만 비정형 부재로까지 기술을 확대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피지컬 AI는 제조업의 인력 구조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위험하고 반복적인 작업은 로봇이 맡고, 사람은 여러 대의 로봇을 관리하거나 공정을 통합 운영하는 역할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다만 상용화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실제 산업현장은 실험실보다 변수가 많고, 설비 구조와 작업 환경도 공장마다 다르다. 로봇이 다양한 돌발 상황에 안정적으로 대응하려면 추가 실증과 데이터 축적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제조 현장의 방향은 분명해지고 있다. 숙련공의 경험에 의존하던 고위험 작업이 AI와 로봇의 판단·제어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진행되던 AI 경쟁이 이제 제철소와 조선소 같은 물리적 산업 현장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Copyrights ⓒ BLOCKCHAINSEOUL.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시장분석#심층분석#리포트#테크주#반도체
목록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