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30일 목요일 03:52
“9000피의 꿈, 한 달 만에 공포가 됐다”
구선 기자kooblock@daum.net
41번의 사이드카와 9번의 서킷브레이커…금융위기보다 거칠었던 코스피 정책 기대와 레버리지 광풍이 키운 변동성…이제는 기업 실적으로 돌아가야

한 달 전만 해도 코스피 9000은 한국 증시의 새로운 출발처럼 보였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과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이 맞물리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끝나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커졌다.
하지만 그 기대가 공포로 바뀌는 데는 한 달이면 충분했다.
지난달 22일 장중 9,114.55까지 올랐던 코스피는 29일 5,665.44까지 떨어졌다.
고점과 비교하면 하락률은 37%가 넘는다. 기업의 가치가 한 달 사이 3분의 1 이상 사라질 정도로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장을 움직인 것은 실적보다 기대와 공포였다.
올해 증시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은 숫자에서도 확인된다. 연초부터 29일까지 코스피에서 사이드카는 41차례 발동됐다. 매수 사이드카가 20차례, 매도 사이드카가 21차례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연간 사이드카 발동 횟수가 26차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시장이 얼마나 심하게 흔들렸는지 알 수 있다. 서킷브레이커도 9차례나 발동됐다.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는 시장의 과도한 움직임을 잠시 멈추기 위한 비상장치다.
그러나 비상장치가 반복적으로 작동하면 더 이상 비상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이달에는 10거래일 연속 사이드카가 발동하면서 시장 안전장치가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공포지수도 같은 신호를 보냈다. 코스피200 변동성지수인 VKOSPI는 지난 28일 83.43까지 올랐고 장중에는 83.65를 기록했다. 투자자들이 앞으로의 시장을 얼마나 불안하게 보고 있는지가 그대로 반영된 수치다.
문제는 이번 급등락이 단순히 중동 사태나 미국 증시 조정 같은 외부 변수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초에는 AI 반도체 기대와 정부 정책이 지수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이후에는 AI 투자 둔화 우려와 미국 반도체주 조정,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한꺼번에 반영됐다.
정부의 반도체 클러스터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시장을 흔들었다.
SK하이닉스의 호남 투자 가능성이 거론되자 기존 용인 클러스터와의 관계를 둘러싼 우려가 확산했다.
정부는 용인 클러스터와 지방 투자를 함께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시장은 정책의 방향보다 불확실성에 먼저 반응했다.
정책 당국의 한마디가 기업의 투자 계획과 주가를 동시에 뒤흔드는 구조가 반복됐다.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상품도 변동성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개인투자자의 선택권을 넓힌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이 출시된 직후 하루 거래대금이 10조원 안팎까지 늘었다.
자금이 일부 대형주에 집중되면서 코스닥 거래대금은 줄었고, 장 마감 무렵 리밸런싱 거래가 몰리면서 주가의 등락 폭도 커졌다. 상승장에서는 불을 붙였고 하락장에서는 낙폭을 키우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금융당국도 뒤늦게 책임을 인정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도입을 “드러누워서라도 말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상품을 운용하는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까지 개인투자자들에게 가급적 투자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경고했다. 상품을 만든 쪽에서 사지 말라고 말하는 상황은 정상적이지 않다.
투자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 개인투자자 역시 높은 수익을 기대하고 레버리지 상품을 선택했다면 손실 가능성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제도를 설계한 당국과 상품을 출시한 금융회사도 “투자자의 선택”이라는 말 뒤에 숨을 수는 없다.
시장 전체의 가격 형성과 변동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품이라면 도입 전부터 충분한 검증과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올해 코스피는 정책의 힘으로 빠르게 올랐고, 정책과 대외 변수에 대한 불신으로 더 빠르게 떨어졌다.
이는 한국 증시가 여전히 기업의 실적보다 정부 발언과 단기 이벤트에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은 필요하다. 다만 주가를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정책보다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정책이 먼저다.
투자자는 정책 발표 때마다 사고파는 시장보다 기업의 매출과 이익, 산업 경쟁력을 믿고 장기간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을 원한다.
9000이라는 숫자는 사라졌지만 그 과정에서 남은 질문은 분명하다.
한국 증시는 기업의 가치를 거래하는 시장인가, 아니면 정책 신호와 레버리지 자금이 밀어 올리고 끌어내리는 시장인가.
41번의 사이드카와 9번의 서킷브레이커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신뢰를 잃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경고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다른 부양책이나 새로운 고위험 상품이 아니다.
정책은 예측 가능해야 하고, 상품은 투자자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설계돼야 한다.
무엇보다 시장은 다시 기업 실적과 기초체력으로 돌아가야 한다.
코스피가 9000을 다시 넘어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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