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5일 토요일 16:06
월가 ‘프라이빗 블록체인’ 경쟁 재점화…상호운용성 잃고 제살깎기 우려
박원빈 기자wbpark@nanryna.kr
이더리얼라이즈 비벡 라만ㅡ “캔톤·아크·템포, 단절된 금융 파이프라인 만들 수 있어” 퍼블릭 체인을 공통 기반으로 두고 개인정보 보호·접근 통제는 상위 계층에서 구현해야

전통 금융권에서 프라이빗·허가형 블록체인 도입 경쟁이 다시 치열해지고 있다.
금융회사가 거래 참여자와 데이터 접근 범위를 직접 통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는 폐쇄형 네트워크가 늘어날 경우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인 상호운용성과 공동 유동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더리움과 전통 금융의 연결을 추진하는 이더리얼라이즈(Etherealize) 공동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 비벡 라만(Vivek Raman)은 최근 월가에서 확산하는 프라이빗 컨소시엄 체인 경쟁을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이라고 비판했다.
비벡 라만은 캔톤 네트워크(Canton Network)와 서클의 아크(Arc), 스트라이프의 템포(Tempo) 등을 최근 대표적인 컨소시엄형 블록체인 사례로 거론했다.
각각 개인정보 보호, 규제 대응, 스테이블코인 결제 등 기관이 요구하는 기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독립된 생태계를 구축할수록 금융 인프라가 여러 개의 폐쇄된 관로로 나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 상황을 ‘컨소시엄 체인 2.0’에 비유했다. 2016년 은행들이 참여했던 R3 컨소시엄과 리눅스재단의 하이퍼레저(Hyperledger) 열풍처럼 금융회사와 기업들이 각자의 블록체인 인프라를 만들지만, 최종적으로는 네트워크 간 경쟁과 파편화가 반복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초기 R3 컨소시엄에는 다수의 글로벌 은행이 참여했지만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산탄데르 등이 이탈하면서 금융권 공동 블록체인 구축의 어려움이 드러난 바 있다.
비벡 라만은 “결국 컨소시엄 체인과 컨소시엄 체인이 경쟁하는 구조가 될 것”이라며 폐쇄형 네트워크가 늘어나면 자산과 사용자가 여러 시스템에 분산되고, 각 네트워크를 연결하기 위한 별도의 인프라가 다시 필요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운영 주체가 참여자를 승인하기 때문에 금융회사가 고객확인제도와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적용하기 쉽다. 거래정보 공개 범위를 제한할 수 있어 기관 간 거래와 민감한 금융정보 처리에도 유리하다.
그러나 네트워크마다 서로 다른 기술과 규칙, 참여 기준을 사용하면 자산 이전과 결제 과정이 복잡해질 수 있다.
동일한 자산이 여러 체인에 나뉘어 존재할 경우 거래 유동성이 분산되고,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브리지나 중개기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라만은 인터넷이 개방형 통신규약인 HTTP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그 위에 보안 기능을 갖춘 HTTPS가 구축된 것처럼, 금융 블록체인 역시 개방된 공통 기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더리움과 같은 퍼블릭 메인넷을 중립적인 결제·정산 계층으로 활용하고, 개인정보 보호와 접근 권한 설정은 애플리케이션 또는 레이어2 네트워크에서 구현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이렇게 하면 기관이 요구하는 통제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공통 유동성과 상호운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라만은 규제 불확실성이 줄어들수록 금융기관이 특정 기업이나 컨소시엄이 소유한 네트워크보다 어느 한 주체에도 종속되지 않는 퍼블릭 블록체인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그는 월가의 블록체인 활용이 단순한 기술 검증 단계에서 실제 자산을 배치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스테이블코인뿐만 아니라 주식과 채권, 부동산, 펀드 등 다양한 자산이 퍼블릭 블록체인에 올라올 수 있다는 전망이다. 관련 인터뷰
다만 금융기관이 반드시 퍼블릭 체인을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반론도 있다. 크리스티안 카탈리니 MIT 크립토이코노믹스랩 설립자는 기업들이 명확한 운영 주체가 있는 폐쇄형 네트워크를 빠르게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이 탈중앙화보다 책임 소재와 관리 편의성을 우선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결국 기관용 블록체인 시장의 핵심 경쟁은 단순히 퍼블릭과 프라이빗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와 규제 준수, 유동성, 상호운용성을 어떤 구조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결합하느냐에 달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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