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3일 금요일 08:30
17년 만에 솟구친 원화 가치…수출엔 '경고등', 수입물가엔 '가뭄의 단비'
지서윤 기자se8ll@naver.com
BIS 9월 실질실효환율 11.7% 급등…엔저 지속에 제조업 가격 경쟁력 비상, 한은 "물가 안정·구매력 회복 효과"

최근 3개월간 원화의 실질 구매력이 급격히 오르며 대외 여건에 복합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주요국 통화 대비 가치가 가파르게 튀어 오르면서 수입 원자재 부담은 줄었지만, 해외 시장에서 일본 등 주요 경쟁국과 치열한 가격 싸움을 벌이는 국내 제조업계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23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9월 원화 실질실효환율(2020년=100)은 92.73으로 집계되어 지난 6월(83.03)보다 11.7% 급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5월 이후 17년 만에 기록한 분기 기준 최대 상승 폭이다.
실질실효환율은 64개 교역 상대국의 물가 변동과 교역 비중을 통합 반영한 지표로, 단순 환율을 넘어 국가 간 실질 가격 경쟁력을 보여주는 척도다. 이번 원화의 반등세는 같은 기간 일본 엔화(1.7%), 호주 달러(1.0%)의 미미한 상승세를 압도했으며, 오히려 가치가 하락한 미국(-0.7%), 대만(-1.9%), 스위스(-3.3%) 등과도 확연한 대조를 이뤘다.
원화 가치를 단기간에 밀어 올린 주된 동력은 반도체 수출 호황에 따른 대규모 외화 유입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급증으로 경상수지 흑자가 대폭 늘어난 데다,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발행 대금 환전 등 대형 외환 거래가 겹치며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이 쏟아진 영향이다.
이 같은 원화 강세는 시장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해외 시장에서 우리 수출 제품의 가격 부담이 커진 점이 악재다. 특히 9월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66.61로 원화와 무려 26포인트 이상 격차를 벌리며 '초엔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동차, 조선, 기계 등 일본과 경합도가 높은 주요 수출 업종에서는 가격 경직성에 따른 실적 악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반면 국내 내수 시장에는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다. 원화 가치 상승은 수입 곡물 및 에너지·원자재 수입 단가를 하락시켜 물가 상승 압력을 완화하고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개선하는 긍정적 측면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실질실효환율이 여전히 100을 하회하고 있어 관점에 따라서는 약세 구간에 해당한다"며 "과도했던 약세가 정상화되는 '되돌림'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화 강세는 수입 물가를 안정시키고 가계의 구매력을 끌어올려 양극화 완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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