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6일 일요일 05:31
폴란드 하원, 대통령의 세 번째 암호화폐법 거부권 뒤집기 실패
박원빈 기자wbpark@nanryna.kr
찬성 241표로 가결 기준에 25표 부족…정부·대통령 규제 수위 놓고 충돌 KNF 감독권·계좌 동결 권한 등이 쟁점…폴란드의 미카 이행 공백 장기화

폴란드 하원이 카롤 나브로츠키(Karol Nawrocki)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암호화폐 시장 규제법을 다시 의결하려 했지만 필요한 찬성표를 확보하지 못했다.
폴란드 국영 통신사 PAP를 인용한 현지 보도에 따르면 폴란드 하원인 세임(Sejm)은 4일 암호화폐 시장법을 재의결하는 표결을 진행했다.
전체 투표 참여 의원 442명 가운데 241명이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효화하는 데 찬성했다. 반대는 198명, 기권은 3명이었다. 거부권 무효화에 필요한 찬성표는 266표로, 최종적으로 25표가 부족했다.
일부 보도에서는 거부권을 뒤집으려면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다.
폴란드 헌법상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효화하려면 법정 의원 수의 절반 이상이 출석한 상태에서 투표자의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세임의 정원 460명이 모두 투표한다면 276표가 필요하지만 이번 표결에는 442명이 참여했기 때문에 실제 가결 기준은 266표였다.
법정 의결정족수는 충족됐지만 찬성표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서 대통령의 거부권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번 표결은 나브로츠키 대통령이 암호화폐 규제법에 행사한 세 번째 거부권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대통령은 2025년 12월 첫 번째 법안을 거부한 데 이어 2026년 2월과 6월에도 수정된 법안에 연이어 거부권을 행사했다. 세임은 앞선 두 차례의 재의결에서도 필요한 5분의 3 찬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지난 6월 세 번째 법안을 거부하면서 정부가 기존에 제기된 우려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과 우파 야당은 정부안이 폴란드 암호화폐 기업에 과도한 규제 비용을 부담시키고 기업을 규제가 더 단순한 다른 유럽연합 국가로 내몰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반면 도날트 투스크(Donald Tusk) 총리가 이끄는 정부와 집권 연정은 암호화폐 시장의 투자자 보호와 불법 자금 흐름 차단을 위해 법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유럽연합의 암호화폐 시장 규제법인 미카(MiCA)를 폴란드에서 집행하기 위한 국내 제도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거부된 법안은 폴란드 금융감독청(KNF)을 암호화폐 시장의 주무 감독기관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KNF는 암호화폐 서비스 제공업체에 대한 허가와 감독을 담당하고 법규 위반 업체에 행정 제재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한, KNF가 규제 위반 가능성이 있는 암호화폐 공개 판매를 중단하거나 일정 기간 정지하고, 토큰의 거래 허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자금 또는 암호화폐 계좌를 동결하고 특정 거래를 최대 96시간 동안 중단할 수 있는 권한도 포함됐다.
정부안은 필요한 경우 계좌 동결이나 거래 중단 기간을 최대 6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 측은 이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줄이고 KNF의 감독 조치에 대한 별도의 사법적 통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위법한 계좌 동결로 손해가 발생했을 때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시했지만 대부분 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세 번째 법안에는 KNF와 재무부 장관이 매년 암호화폐 시장 운영 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하도록 하는 대통령실의 제안만 포함됐다.
나머지 핵심 요구 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전 법안과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대통령 측의 판단이다.
규제 비용도 논란이 됐다. 법안은 암호화폐 발행자에게 최대 0.5%, 암호화폐 서비스 제공업체에는 최대 0.4%의 KNF 감독 수수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미신고 토큰 발행이나 무허가 암호화폐 서비스 제공 등 일부 위반 행위에는 형사책임을 적용하는 조항도 담겼다.
이번 표결 결과로 폴란드의 미카 국내 집행체계 공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미카는 유럽연합 전체에 직접 적용되는 규정이지만 사업자 인허가와 시장 감독을 수행할 국내 기관 및 구체적인 절차는 회원국이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폴란드가 관련 국내법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자국 사업자를 대상으로 미카 인가를 발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허가받은 업체는 패스포팅 제도를 이용해 폴란드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폴란드 기업은 국내에서 필요한 인가를 받기 어려운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표결 결과가 암호화폐 시장을 규제하지 않기로 한 최종 결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와 의회가 새로운 법안을 다시 마련할 가능성이 있으며, 향후 논의에서는 KNF의 계좌 동결 권한과 감독 수수료, 사법적 통제 장치 등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폴란드 정부와 대통령실이 규제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규제 수위를 놓고 충돌하고 있는 만큼 정치권이 절충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미카 집행을 둘러싼 법적 불확실성과 자국 암호화폐 기업의 경쟁력 우려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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