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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3일 수요일 12:12

“스테이블코인 준비금, 은행에 넣지 마라?”…ECB, MiCA 핵심 규정 수정 제안

이정민 기자upjm000@gmail.com

현행 준비금 30%·주요 발행사 60% 은행예금 의무 폐지 제안…“스테이블코인 런이 은행으로 번질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준비금, 은행에 넣지 마라?”…ECB, MiCA 핵심 규정 수정 제안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연합(EU) 27개국 중앙은행으로 구성된 유럽중앙은행제도(ESCB)​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준비금 가운데 일정 비율을 은행예금으로 보관하도록 한 현행 규정을 없애자고 제안했다.

현재 EU의 암호화자산시장법 MiCA에서는 관련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준비자산의 최소 30%를 은행예금으로 보유하도록 요구한다.

중요한 규모의 발행사에는 이 비율이 60%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ECB와 EU 중앙은행들은 오히려 이 규정이 금융시스템에 새로운 위험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핵심 논리는 간단하다.

스테이블코인에 문제가 생기면 준비금이 예치된 은행에서도 대규모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30%를 은행에 넣어라”…그런데 ECB가 반대했다

MiCA의 기존 규정은 스테이블코인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발행사가 이용자의 돈을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대신 상당 부분을 은행에 예치하도록 해 언제든 환매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ECB와 EU 중앙은행들은 이 구조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커질수록 은행에는 발행사들의 거대한 예금이 쌓이게 된다.

문제는 이 돈의 성격이다.

일반 개인이나 기업의 예금과 달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준비금은 시장 상황이 악화될 경우 대규모로 동시에 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ESCB는 스테이블코인 준비금이 은행예금으로 보관되면 은행의 자금조달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소매예금이 시장 상황에 더욱 민감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예금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인런이 뱅크런으로 번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형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신뢰가 갑자기 무너졌다고 가정해보자.

투자자들이 스테이블코인을 달러나 유로로 바꾸기 위해 대규모 환매를 요청한다.

발행사는 이를 지급하기 위해 준비자산을 꺼내야 한다.

그 준비금의 상당 부분이 은행에 있다면?

은행에서는 짧은 시간에 거액의 예금이 빠져나간다.

즉,

스테이블코인 런 → 발행사의 대규모 예금 인출 → 은행 유동성 압박

으로 충격이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 방향도 가능하다.

준비금을 보관한 은행 자체에 문제가 발생하면 이번에는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이 위험해진다.

ECB는 이미 올해 6월 관련 분석에서 현행 규정이 스테이블코인과 전통 은행 사이의 금융 전염 위험을 증폭시킬 가능성을 지적한 바 있다.

이미 실제 사례가 있었다

이 구조의 위험은 이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붕괴했을 당시 Circle의 USDC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시 USDC 준비금 일부가 SVB에 예치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장의 불안이 급격하게 커졌다.

USDC는 한때 달러와의 1대1 가격을 유지하지 못하고 디페깅을 경험했다.

ECB 역시 올해 발표한 자료에서 이 사례를 언급하며 은행의 문제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준비금을 은행에 보관하면 안전하다는 단순한 공식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 준비금은 어디에 보관하나

ECB가 주장하는 것은 준비금 규제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규제 방식을 바꾸자는 쪽에 가깝다.

현재처럼 준비금의 30% 또는 60%를 무조건 은행예금으로 보관하도록 강제하는 대신,

발행사가 보유한 준비자산 가운데 일정 비율을 1~5영업일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매우 유동적인 자산으로 보유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핵심은 자산의 위치가 아니라,

“대규모 환매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빨리 현금화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제안을 단순한 스테이블코인 규제 완화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은행예금 비율 규제를 없애는 대신 준비자산 자체의 유동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관리하자는 접근이기 때문이다.

국채가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현행 MiCA 구조에서는 은행예금으로 보관하지 않는 준비금 역시 아무 자산이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위험·고유동성 금융자산을 중심으로 운용해야 한다.

ECB는 앞선 분석에서 유로화 스테이블코인이 성장할 경우 발행사들의 유럽 국채 보유 규모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분석했다.

은행예금 의무 비율이 낮아지고 대신 단기·고유동성 자산 보유가 중요해진다면 단기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의 역할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실제 규정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번 내용은 ECB와 EU 중앙은행들이 MiCA 관련 협의 과정에서 제시한 정책 제안이다.

ECB가 걱정하는 또 하나…‘해외판 스테이블코인’

중앙은행들이 문제 삼은 것은 준비금 규정뿐만이 아니다.

같은 스테이블코인을 EU와 EU 밖에서 동시에 발행한 뒤 서로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멀티이슈어(multi-issuance) 구조​에도 우려를 표시했다.

예를 들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기업이 유럽에서 발행한 토큰과 미국 등 다른 지역에서 발행한 토큰을 사실상 동일한 자산처럼 취급하는 방식이다.

ECB 측은 이러한 구조가 허용될 경우 EU 내 준비자산과 해외 발행분 사이의 위험이 연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MiCA에서는 이런 구조가 제한돼 있으며, 중앙은행들은 향후 이를 허용하려면 강력한 안전장치와 제3국 규제에 대한 동등성 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럽은 스테이블코인을 막으려는 것만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ECB가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위험을 경고하는 동시에 블록체인 금융 인프라는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ECB는 지난 21일 Pontes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가동했다.

은행과 투자자가 블록체인 기반 금융자산을 거래한 뒤 ECB가 발행하는 중앙은행 화폐를 이용해 결제·정산할 수 있도록 기존 결제시스템과 분산원장을 연결하는 서비스다.

Deutsche Bank와 Santander, Clearstream 등 주요 금융기관도 초기 참여자에 포함됐다.

즉 유럽의 방향은 ‘블록체인을 금지한다’기보다는,

블록체인은 금융 인프라에 활용하되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시스템의 새로운 위험 요인이 되는 것은 막겠다는 방향에 가깝다.

스테이블코인이 커지면서 규제의 질문도 달라졌다

초기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핵심 질문은 단순했다.

“발행사가 실제로 준비금을 가지고 있는가?”

하지만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질문도 바뀌고 있다.

“그 준비금을 어디에 보관하는가?”

“대규모 환매가 발생하면 얼마나 빨리 현금화할 수 있는가?”

“준비금이 들어간 은행은 안전한가?”

“스테이블코인 위기가 은행 시스템으로 전염될 수 있는가?”

가 중요해지고 있다.

ECB가 현행 30~60% 은행예금 의무를 다시 검토하자고 제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커질수록 단순한 암호화폐 규제가 아니라 은행의 자금조달과 국채시장, 결제시스템까지 연결된 금융안정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아직 MiCA 규정이 실제로 변경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EU 중앙은행들이 직접 현행 핵심 규정의 수정을 제안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스테이블코인의 다음 경쟁은 발행량과 사용처뿐만 아니라,

수천억달러의 준비금을 어떤 구조로 안전하게 보관할 것인가를 둘러싼 금융 인프라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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