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1일 토요일 16:35
美 연준 CBDC 발행 금지 법제화…트럼프 서명 없이 자동 발효
박원빈 기자wbpark@nanryna.kr
주택법안에 2030년 말까지 발행 제한 조항 포함…민간 스테이블코인은 적용 제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제한하는 조항이 법제화됐다.
미국의 주택 공급 확대와 주거비 부담 완화를 목적으로 마련된 ‘21세기 ROAD 투 하우징 법안(21st Century ROAD to Housing Act)’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 없이 자동으로 법률 효력을 갖게 됐다.
해당 법안에는 연준이 CBDC를 직접 발행하거나 금융기관 등 중개기관을 통해 유사한 디지털 통화를 제공하는 것을 2030년 12월 31일까지 제한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미국 연준은 별도의 의회 승인이나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향후 수년간 소매용 CBDC를 발행하거나 관련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다만 이번 조치는 연준의 CBDC 발행을 영구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은 아니다. 법안에 설정된 제한 기한은 2030년 말까지로, 이후 의회의 추가 입법 여부에 따라 정책 방향이 다시 달라질 수 있다.
또한, 비트코인과 같은 개방형 디지털 자산이나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은 금지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연준이 직접 발행하고 통제하는 디지털 화폐를 제한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이번 법안은 미국 상원에서 85대 5, 하원에서 358대 32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됐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주택 공급 부족과 주거비 상승 문제에 공동 대응하면서 최근 미국 의회에서 보기 드문 초당적 입법 사례가 됐다.
법안은 주택 건설과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제조주택과 저렴한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대형 기관투자자의 단독주택 추가 매입을 제한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법안의 내용보다 별도의 선거법안 처리를 우선해야 한다며 서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권자 등록 과정에서 미국 시민권 증명을 의무화하는 ‘SAVE America Act’가 먼저 처리되지 않을 경우 주택법안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SAVE America Act는 연방 선거의 유권자 신원과 시민권 확인 절차를 강화하는 법안이다. 지지자들은 비시민권자의 투표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반대 측에서는 합법적인 유권자의 등록 절차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택법안에 서명하지 않았지만 법안은 무산되지 않았다. 미국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에게 전달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일요일을 제외한 10일 동안 서명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의회가 회기 중인 경우, 해당 법안은 대통령의 서명 없이도 법률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채 서명을 보류했고, 이에 따라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서 법안이 자동으로 발효됐다.
이는 대통령이 서명을 거부해 법안이 폐기되는 ‘포켓 비토’와는 다른 구조다. 포켓 비토는 대통령의 검토 기간 중 의회가 폐회해 법안을 다시 돌려보낼 수 없을 때 적용된다. 이번에는 의회가 회기 중이었기 때문에 자동 발효 규정이 적용됐다.
이번 법제화로 미국의 CBDC 반대 정책은 행정부 차원을 넘어 의회가 승인한 법률적 근거를 확보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2025년 1월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기관이 미국 CBDC를 설립하거나 발행·추진하는 것을 금지한 바 있다. 그러나 행정명령은 차기 행정부가 변경하거나 폐기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이번 법률은 의회의 새로운 입법 없이는 변경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책의 지속성이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정치권에서 CBDC 반대론자들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가 정부의 금융거래 감시와 개인 소비 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거래 내역 추적과 계좌 제한, 특정 거래 통제 가능성이 개인의 금융 프라이버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CBDC 지지 측에서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결제 속도를 높이고 금융 비용을 낮추며 민간 디지털 결제 수단과 경쟁할 수 있는 공공 인프라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번 조치가 민간 스테이블코인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의 디지털 달러 전략이 CBDC보다 민간 부문 중심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정부가 연준 발행 CBDC에는 제동을 거는 반면, 규제를 준수하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결제 활용은 제도권 안에서 확대하는 이중 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USDT와 USDC를 비롯한 달러 스테이블코인 시장에는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규제 신호가 될 수 있다.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달러의 경쟁 가능성이 제한되는 만큼 민간 발행사가 디지털 결제와 송금시장에서 역할을 확대할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법안의 핵심 목적은 주택시장 개혁이며 CBDC 금지는 부수적으로 포함된 조항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향후 정권 교체나 의회 구성 변화, 디지털 결제시장 상황에 따라 2030년 이후 제한이 연장되거나 완화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번 법률 발효로 미국은 주요 경제국 가운데 CBDC 도입에 가장 신중한 국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반면 유럽연합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디지털 유로와 디지털 위안화 개발 및 실험을 이어가고 있어 국가별 디지털 통화 정책의 차이도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박원빈 기자 wbpark@nanryn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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