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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6일 일요일 06:32

“AI에 블록체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은 위험합니다” — 윤석빈이 말하는 진짜 결합 지점

이윤호 기자admin@blockchainseoul.kr

윤석빈

서강대교수

AI가 일하고, 블록체인이 증명하고, 스테이블코인이 결제하는 시대

“AI에 블록체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은 위험합니다” — 윤석빈이 말하는 진짜 결합 지점

Q1.최근 AI의 발전을 지켜보시면서 과거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시는 부분은?

“AI가 ‘답하는 도구’에서 ‘일하는 존재’로 넘어가는 데, 제 예상의 3분의 1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AI가 더 이상 질문에 답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업무 프로세스를 통째로 수행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의 AI는 검색·번역·요약 같은 보조 도구였습니다. 지금은 목표를 주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코드를 짜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외부 시스템을 호출하고, 다른 AI를 불러 씁니다. 사람이 한 단계씩 지시하던 방식에서 결과에 대해 위임하는 방식으로 넘어가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비용 곡선이 겹칩니다. 같은 성능을 내는 데 드는 추론 비용이 해마다 자릿수 단위로 떨어졌습니다. 기술이 좋아지는 것보다 무서운 건 싸지는 겁니다. 싸지는 순간 AI는 ‘필요할 때 부르는 것’에서 ‘24시간 켜두는 것’이 되고, 그때 조직의 설계가 통째로 바뀝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지금이 딱 그 문턱이라는 점입니다. 2026년 Stanford AI Index를 보면 조직의 AI 도입률은 88%까지 올라왔지만, AI 에이전트의 실제 업무 배치는 거의 모든 직무에서 아직 한 자릿수입니다. 도구는 다 깔렸는데, 일을 맡기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저는 이 간극이 다음 폭발이 일어날 자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우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이 AI에게 일을 맡겨도 되는가”에 답할 방법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 윤석빈교수


Q2. ‘AI 오케스트레이터’란 어떤 사람이고, 기존의 AI 활용자와 무엇이 다른가?

“프롬프트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일의 구조를 설계하고 결과에 서명하는 사람입니다.”

AI를 잘 쓰는 사람과 AI 시대를 주도하는 사람의 차이는 얼마나 잘 쓰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책임지느냐에 있습니다.

AI 활용자는 자기 일을 더 빨리 합니다. 성과가 본인 숙련도에 비례해 선형으로 늘어납니다. 반면 AI 오케스트레이터는 일 자체를 다시 설계합니다. 구체적으로 네 가지를 합니다.

1.  문제 정의 — 무엇을 만들 것이며, 무엇이 ‘잘된 결과’인지를 먼저 규정한다

2.  분해와 배치 — 일을 공정으로 나누고, 리서치·초안·검증·편집에 각각 다른 에이전트를 배치한다

3.  검증 설계 — 결과를 무엇으로 검증할지 미리 정해둔다. 이게 없으면 속도만 빨라지고 품질은 무너진다

4.  책임 — 최종 산출물에 자기 이름을 건다

지휘자는 모든 악기를 가장 잘 연주해서 지휘자가 아닙니다. 총보를 읽고, 배치하고, 균형을 잡고, 연주 결과에 책임지기 때문에 지휘자입니다. 과거의 관리자가 사람이라는 자원을 관리했다면, 오케스트레이터는 AI라는 새로운 노동 자원을 지휘합니다.

결국 질문이 바뀝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직접 할 수 있는가”에서 “얼마나 좋은 시스템을 설계하고 AI에게 일을 맡길 수 있는가”로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이 중 가장 작은 부분입니다.

Q3. 한 사람이 직원 수십 명, 수백 명의 역할을 대신하는 기업이 실제로 등장할까?

“한 사람이 100명을 대체하는 게 아닙니다. 20~30명 조직이 내던 산출을 한 사람과 에이전트 팀이 냅니다. 그리고 병목은 생산에서 신뢰로 옮겨갑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만 “AI가 사람 100명을 대체한다”는 식으로 읽으면 본질을 놓칩니다.

핵심은 창업과 조직의 비용 구조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개발자·디자이너·마케터·회계·고객지원을 확보해야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한 사람이 그 기능들을 에이전트로 배치할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콘텐츠, 컨설팅, 디자인, 해외 소싱에서는 이미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병목이 이동한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1인 기업의 한계는 ‘생산 능력’이었습니다. 혼자서는 그만큼 못 만드니까요. 이제 생산은 거의 무한히 늘어납니다. 그러면 남는 병목은 세 가지입니다. 신뢰(저 사람이 만든 결과를 왜 믿어야 하는가), 책임(문제가 생기면 누가 지는가), 유통(만든 것을 누가 사주는가)입니다.

산출량은 기하급수로 늘지만, 나를 믿어줄 근거는 자동으로 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슈퍼 1인 기업의 진짜 인프라는 협업 툴이 아니라 신뢰 인프라 — 신원, 이력, 계약, 결제 — 라고 봅니다. 제가 AI와 Web3를 한 몸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앞으로 기업을 평가할 때 “사람이 몇 명인가”만 봐서는 안 됩니다. 몇 개의 에이전트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그것을 얼마나 잘 오케스트레이션하며, 그 결과를 무엇으로 증명하는가까지 봐야 합니다.

Q4. 앞으로 인간의 전문성보다 더 중요해지는 능력은?

“전문성은 사라지지 않고 이동합니다. ‘실행하는 전문성’에서 ‘판별하는 전문성’으로요.”

먼저 오해 하나를 풀고 싶습니다. 전문성이 덜 중요해지는 게 아닙니다. AI가 내놓은 결과가 틀렸다는 걸 알아채는 능력은 전문가만 가지고 있습니다. 비전문가는 그럴듯한 오답과 정답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전문성은 실행에서 검증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 위에 새로 중요해지는 능력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AI는 답을 잘 만들지만 질문을 대신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코드를 짜는 능력보다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정하는 능력이, 글을 쓰는 능력보다 어떤 메시지를 세상에 낼지 정하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둘째, 판단하고 검증하는 능력. 가장 빨리 도태되는 사람은 AI를 안 쓰는 사람이 아니라 AI 결과를 검증 없이 그대로 내보내는 사람입니다. 자동화 편향이 앞으로 가장 큰 직업적 위험입니다.

셋째, 연결하는 능력, 그리고 세계관입니다. AI는 엄청난 생산성을 만들지만 “무엇이 좋은 사회인가”, “무엇이 인간에게 가치 있는가”를 결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AI 시대에는 전문지식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전문지식 위에 판단력·창의성·철학·윤리가 얹혀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신뢰 자본이 남습니다. 계약은 결국 책임질 사람과 하니까요.

Q5. 지금도 블록체인이 AI 시대의 핵심 신뢰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보시나요?

“생성형 AI가 나온 뒤로 그 주장은 더 강해졌습니다. 다만 ‘모든 걸 온체인에’가 아니라 ‘데이터는 오프체인, 증명만 온체인’으로 정교해졌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이유는 생성형 AI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무엇이 원본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도, 음성도, 문서도, 코드도 눈으로는 구분할 수 없습니다.

판별로는 못 이깁니다. 위조 탐지와 위조 기술의 경쟁은 결국 위조가 이깁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가짜를 찾아내는 대신, 진짜에 처음부터 서명을 붙이는 것입니다.

AI가 콘텐츠와 데이터를 무한히 생성하는 시대에는 이런 질문들이 남습니다.

   이 데이터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가 만들었고, 변경되지 않았는가

   이 AI는 누구를 대신해 행동했는가

   이 의사결정은 어떤 데이터와 모델을 근거로 했는가

이 질문에 중앙화된 시스템 하나를 무조건 믿는 방식으로는 답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서로 다른 회사, 서로 다른 나라 사이에서는요.

다만 제 주장에서 한 가지는 정교해졌습니다. 예전에는 “기록을 블록체인에 올린다”고 말했다면, 지금은 이렇게 말합니다. 데이터는 오프체인에, 증명만 온체인에. 원장은 무거우면 안 됩니다. 얇고, 중립적이고, 오래가야 합니다. 올라가야 할 것은 해시, 서명, 자격증명의 발급·폐기 기록 정도입니다.

제가 예전에 ‘블랙박스’라고 표현한 이유가 그겁니다. 항공기 블랙박스는 사고를 막지 못합니다. 대신 사고 후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다투지 않게 만듭니다. AI 시대의 분쟁은 대부분 사실관계 다툼이 될 것입니다.

Q6. (날카롭게) AI 시대에 정말 블록체인이 반드시 필요한가?

“AI에 블록체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필요해지는 건 AI가 ‘신뢰의 경계’를 넘어가는 순간부터입니다.”

정직하게 답하겠습니다.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추론하는 데 블록체인은 필요 없습니다. GPU, 데이터, 알고리즘만으로 AI는 충분히 발전합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 과장이 오히려 이 산업의 신뢰를 깎아왔습니다.

블록체인이 필요해지는 조건은 딱 하나입니다. 신뢰의 경계를 넘어갈 때.

한 회사 안에서 우리 직원이 우리 AI를 쓰는 데는 데이터베이스와 감사로그면 충분합니다. 중앙 관리자가 있으니까요. 문제는 서로 다른 법인, 서로 다른 나라, 공통의 관리자가 없는 당사자들 사이입니다. AI가 계약하고, 자산을 사고팔고, 다른 AI에게 비용을 지급하는 순간이 정확히 그 지점입니다.

블록체인 없이 풀기 어려운 영역은 네 가지입니다.

1.  조직 간 에이전트 상호운용 — A사 에이전트가 “나는 정당한 권한이 있다”고 주장할 때, B사가 A사의 내부 인증 시스템을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2.  기계 대 기계의 소액·즉시 결제

3.  발급기관이 사라져도 유효한 장기 증명 — 10년 뒤 그 회사가 없어져도 증명은 남아야 합니다

4.  중립적인 평판·폐기 레지스트리 — 특정 빅테크가 소유한 디렉터리라면, 그 회사가 시장의 문지기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AI와 블록체인의 결합 지점을 모델 자체가 아니라 AI가 현실 세계와 만나는 경계면이라고 봅니다. 블록체인은 AI의 부품이 아니라, AI 경제의 공증 인프라입니다. 부품이라고 주장하면 틀리고, 공증 인프라라고 하면 대체 불가능합니다.

Q7. ‘이 AI가 누구의 AI인지, 믿을 수 있는 AI인지’를 블록체인이 어떻게 해결하나?

“AI에게도 여권과 위임장과 거래이력이 필요한 시대가 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즉시 회수할 수 있는가’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터넷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신원을 관리했습니다. AI 에이전트가 경제활동을 시작하면 ‘AI의 신원’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합니다.

어떤 에이전트가 “나는 A기업의 구매 에이전트다”라고 주장한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냥 믿어서는 안 됩니다. 세 겹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① 신원 — 이게 누구인가. 에이전트에 고유 식별자를 부여하고 그 뒤에 있는 사람 또는 법인과 암호학적으로 연결합니다. 핵심은 익명이냐 실명이냐가 아니라 책임 주체까지 추적 가능한가입니다.

② 위임 — 누구의 권한으로 움직이는가. 사람이 에이전트에게 발급하는 검증 가능한 자격증명(VC)에 권한 범위, 금액 한도, 유효기간, 사용 조건이 담깁니다. “이 에이전트는 내 이름으로 월 100만 원 한도 내에서 클라우드 비용만 결제할 수 있다”가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서명되어야 합니다.

③ 이력 — 믿을 만한가. 과거 수행 기록과 제3자 검증 결과가 남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폐기(revocation)입니다. 사람은 카드를 잃어버려도 피해가 제한적이지만, 에이전트 키가 탈취되면 초당 수백 건의 피해가 납니다. 1초 안에 무력화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정보를 상대방이 즉시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폐기 목록만큼은 특정 회사가 소유하면 안 됩니다. 상시 가용하고 중립적이어야 한다 — 여기가 온체인의 자리입니다.

표준도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2026년 1월 이더리움 메인넷에 ERC-8004(Trustless Agents)가 올라갔습니다. 신원·평판·검증 세 개의 레지스트리로 구성되고, 에이전트 통신 프로토콜과 결제 레일 사이의 온체인 신뢰 계층 역할을 합니다. 가스비 문제로 Base 같은 L2로 확산되는 중입니다.

저는 이 영역을 NHI(Non-Human Identity) 거버넌스라고 부릅니다. 제로트러스트의 원칙 — “모든 요청을 매번 검증하라” — 을 사람이 아니라 기계에 적용하는 일입니다. 지금 대부분의 기업은 사람 계정은 관리하는데 에이전트 계정은 관리하지 않습니다. 다음 대형 보안 사고는 여기서 터질 겁니다.

Q8. AI 에이전트에게도 온체인 신원과 ‘AI 신용점수’가 생길까?

“옵니다. 다만 하나의 숫자로 만들면 실패합니다. 필요한 건 점수가 아니라 AI Reputation Graph, 그리고 담보입니다.”

가능성은 상당히 높습니다. 이미 초기 형태가 나와 있습니다.

다만 저는 ‘신용점수’라는 단일 숫자 비유에는 조심하자는 쪽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건 점수가 아니라 AI Reputation Graph, 즉 행동과 관계가 누적되는 평판 네트워크입니다. 어떤 에이전트가 지난 1년간 몇 건의 거래를 수행했고, 계약을 얼마나 지켰고, 결제를 얼마나 정확히 했고, 어떤 상대와 거래했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Machine-to-Machine Trust입니다.

설계 원칙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1.  단일 점수가 아니라 맥락별 평가 — “신뢰도 87점”이 아니라 “번역 과업 1,200건, 분쟁 3건, 평균 응답 4초”여야 합니다. 사람도 의사로서의 신뢰와 운전자로서의 신뢰가 다릅니다

2.  의견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증거 — 별점이 아니라 서명된 어테스테이션이어야 합니다. 별점은 사고팔 수 있습니다

3.  프라이버시와 이의제기 — 영지식증명으로 “조건을 충족했다”만 증명하고, 잘못된 기록을 다툴 절차와 소멸시효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냉정하게 하나 덧붙이겠습니다. 최근 이 표준을 실증 분석한 연구를 보면, 등록된 신원 상당수가 실질 활동 없는 껍데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아직 평판을 신호로 쓰기엔 데이터가 얇습니다.

그래서 순서는 평판이 아니라 담보가 먼저입니다. 현실에서도 처음 만나는 상대와는 평판이 아니라 보증금과 보험으로 거래합니다. 에이전트 경제도 스테이킹·에스크로·보험이 먼저 자리 잡고, 그 위에 평판이 얹혀야 실효가 생깁니다.

Q9. 왜 스테이블코인이 AI 에이전트의 결제수단으로 적합한가?

“기존 결제망은 ‘사람’을 전제로 설계됐습니다. 명의, 분쟁조정, 최소 수수료 — 이 세 가지가 기계 결제에서는 전부 걸림돌입니다.”

AI가 쓰는 돈은 사람이 쓰는 돈과 요구사항이 다릅니다. AI는 24시간 일하고, 국경을 넘고, 수많은 상대와 소액 거래를 합니다. 정리하면 다섯 가지입니다.

1.  초소액 — API 호출 한 번에 0.001달러를 지불해야 합니다

2.  24/7 즉시 정산 — 은행 영업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3.  프로그래머블한 조건과 한도 —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 지급, 아니면 에스크로”

4.  기계가 직접 개시 — 사람의 클릭 없이

5.  국경 무관

카드와 계좌는 1번에서 구조적으로 막힙니다. 최소 수수료가 거래 금액보다 큽니다. 4번도 막힙니다. 카드망은 ‘명의자인 사람’을 전제로 설계됐고 그래서 차지백 구조가 있습니다. 기계가 초당 수십 건을 일으키는 걸 상정하고 만든 시스템이 아닙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이 조건에 잘 맞고, 스마트컨트랙트와 결합하면 조건부 자동 지급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HTTP 402 기반 결제 프로토콜인 x402는 이미 1억 건 이상의 트랜잭션을 처리했습니다. 결제가 별도의 절차가 아니라 프로토콜 레벨의 기능이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균형 있게 말씀드리면 숙제도 큽니다. 준비자산과 상환, 금융안정성 이슈는 BIS도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있고, 무엇보다 온체인 결제는 취소가 안 됩니다. 에이전트가 오작동하면 되돌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제 레일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출 한도, 수취인 화이트리스트, 다중 서명, 에스크로, 지연 인출 같은 정책 엔진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합니다. 자율성은 브레이크가 있을 때만 허용됩니다.

Q10. 블록체인의 가장 큰 사용자가 인간이 아니라 AI가 되는 시대도 가능한가?

“건수로는 거의 확실합니다. 금액으로는 당분간 인간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블록체인의 설계 기준 자체가 바뀝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인터넷 초창기에는 사람이 인터넷을 썼습니다. 지금은 서버와 시스템이 서로 끊임없이 통신합니다. 트래픽의 주인이 바뀐 겁니다. 블록체인도 같은 경로를 갈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루에 결제를 많아야 열 번 합니다. 에이전트는 초당 수십 번을 합니다. 데이터를 구매하고, GPU 사용료를 내고, API를 호출하고, 다른 AI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광고비를 지급합니다. 건수 기준으로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다만 금액 기준으로는 다릅니다. 부동산, 인수합병, 대출 같은 큰 결정은 상당 기간 사람이 최종 승인할 겁니다. 실제로 현재 안정화된 스테이블코인의 국경 간 결제 비중은 전체 자금 흐름에 비하면 아직 작고, BIS도 은행화폐와 FX·결제 시스템이 연결되는 하이브리드 모델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건수는 기계, 금액은 인간”의 시기가 꽤 길 것입니다.

더 중요한 건 이것이 인프라 설계의 우선순위를 바꾼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이 업계가 고민한 건 사람의 UX였습니다. 지갑 설치를 어떻게 쉽게 할까, 시드 문구를 어떻게 없앨까. 사용자가 기계라면 요구사항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측 가능한 수수료, 결정적 완결성, 정책과 한도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 감사 가능성입니다.

저는 이걸 “인간을 위한 블록체인에서 기계를 위한 블록체인으로”라고 표현합니다. Machine-to-Machine Economy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건 기존 체인들에게 꽤 불편한 소식입니다. 그동안 쌓아온 UX 자산이 별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Q11.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와 경쟁력을 가질 분야는?

“USDT·USDC와 세계 시장에서 붙자는 게 아닙니다. 국내 상거래의 정산 계층을 달러 토큰에 내주지 말자는 겁니다. 그리고 진짜 승부처는 ‘AI 에이전트가 쓰는 원화’입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한 이유는 “한국 코인을 하나 더 만들자”가 아닙니다. 핵심은 한국 경제의 디지털 정산 인프라를 누가 장악하느냐입니다.

세 가지 관점에서 봅니다. 첫째, 결제 주권. 국내 기업 간 거래와 국내 서비스 결제가 달러 토큰으로 정산되기 시작하면 그건 디지털 달러화입니다. 이미 국내 이용자들이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 중심으로 거래하면서 자금 유출 규모가 상당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둘째, 정산 인프라 경쟁력. 24시간 프로그래머블 정산은 곧 결제의 기본 사양이 됩니다. 셋째, 데이터 주권. 결제 데이터는 곧 상거래 데이터입니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는 다음과 같이 봅니다.

   국내 B2B 정산과 대금 지급 자동화 — 프랜차이즈 가맹점 정산, 물류 운임, 하도급 대금처럼 조건부·주기적 지급이 많은 영역

   K-콘텐츠·게임·웹툰의 소액 결제와 해외 정산 — 소액·다국가·정산 지연이 문제인 시장에 정확히 맞습니다

   관광과 역직구

   무역금융과 아시아 결제 회랑

   AI 에이전트 기반 결제 — 여기가 진짜 기회입니다

마지막 항목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송금 수단’으로만 설계하면 늦습니다. 3년 뒤 결제의 상당 부분은 에이전트가 일으킵니다. 그때 국내 서비스에 원화로 값을 치를 수단이 없으면, 한국 AI 서비스들이 전부 달러 토큰으로 정산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기계가 쓸 수 있게 설계된 원화여야 한다는 뜻이고, 프로그래머블 한도와 조건부 지급이 제도 설계 단계에서 고려돼야 합니다.

제도 상황도 짚겠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을 추진하면서 9월 당정 통합 법안 발의와 연내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만 발행 연합체 내 은행 지분 과반 의무화, 이자 지급 허용 여부, 준비자산 기준 등 핵심 쟁점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발행 주체 논쟁보다 준비자산·상환청구권·감독 기준이 본질이라고 봅니다. 거기가 흔들리면 누가 발행하든 신뢰를 못 얻습니다. 반대로 그것만 단단하면, 발행 주체는 시장이 정리할 문제입니다.

Q12. 한국 Web3 산업의 가장 큰 문제점과 AI×Web3 시대의 기회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투자 시장’은 세계 최고인데 ‘이용 시장’이 없었고, 표준을 쓰는 쪽이었지 만드는 쪽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Web3의 문제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처음부터 설계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시장이 투자에 편중되고 이용이 없습니다. 거래대금은 세계 최상위권인데 블록체인으로 실제 업무를 처리하는 기업은 손에 꼽습니다. ‘가격’은 커졌는데 ‘효용’은 안 자랐습니다.

둘째, 규제 불확실성이 구조를 왜곡했습니다. 국내 법인이 토큰을 발행하기 어려우니 재단을 해외에 세웠습니다. 그러면 인재도, 세수도, 축적되는 노하우도 밖에 남습니다. 규제가 산업을 막은 게 아니라 산업을 국외로 옮겼습니다.

셋째, PoC는 많고 운영은 적습니다. 시범사업은 수백 건 했는데 3년 이상 실운영되는 사례가 드뭅니다. 성과지표가 ‘구축 완료’였지 ‘지속 운영’이 아니었던 탓이 큽니다.

그런데 AI×Web3에서는 판이 리셋됩니다.

제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AI 에이전트 경제와 디지털 자산 인프라의 결합입니다. AI에게 신원과 지갑을 부여하고, AI가 자산과 계약을 관리하며, 블록체인이 이를 검증하고, 스테이블코인이 결제하는 구조입니다. 이 분야는 아직 완성된 글로벌 표준이 없습니다. 이제 막 메인넷에 올라와 실증 연구가 나오는 단계입니다. 지금 참여하면 규칙을 만드는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강점도 분명합니다. 실물 데이터(제조·물류·반도체·콘텐츠), 전 국민 규모의 디지털 신원 운영 경험(모바일 신분증),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수용 속도. 특히 두 번째는 그 자체로 수출 가능한 자산입니다.

제 제언은 하나입니다. ‘코인’이 아니라 ‘증명’과 ‘정산’으로 접근하십시오. 토큰 가격이 아니라 기업의 정산 비용과 감사 비용을 줄여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산업이 삽니다. 그리고 표준 논의의 방에 한국 기업이 들어가야 합니다.

Q13. 지금은 닷컴버블과 비슷한 과열 구간인가, 새로운 산업혁명의 초입인가?

“AI는 버블일 수 있지만, AI 혁명은 버블이 아닙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자금 조달 구조입니다.”

둘 다입니다. AI라는 산업 자체는 버블이 아닙니다. 하지만 AI 기업의 모든 가치평가가 정당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인터넷 시대에도 인터넷은 거대한 혁명이었지만 수많은 기업의 밸류에이션은 과도했습니다.

수요와 기술은 실재합니다. Stanford AI Index 2026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기업 AI 투자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생성형 AI 투자는 200% 넘게 증가해 전체 민간 AI 자금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서사가 아니라 실사용에 기반한 숫자입니다.

과열된 건 자본 구조입니다. 세 가지가 걸립니다. 자체 현금흐름을 넘어서는 설비투자와 그에 따른 부채 급증, 칩을 파는 공급자가 동시에 고객사의 투자자로 나서는 순환 거래 구조, 그리고 감가상각 주기가 짧은 자산에 장기 부채를 붙이는 미스매치입니다. 특히 순환 거래는 닷컴 때 통신장비 업체들의 벤더 파이낸싱과 형태가 흡사합니다.

다만 역사는 위로가 됩니다. 1840~50년대 철도 버블과 닷컴 버블은 모두 붕괴 후에 인프라가 남아 생산성을 올렸습니다. 과잉투자로 깔린 철도망이 영국 산업혁명의 기반이 됐고, 닷컴 때 만들어진 인터넷 인프라가 모바일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착한 버블’이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번 데이터센터 붐도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층위를 구분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력·냉각·네트워크는 구조적 수요, 반도체는 사이클 존재, 모델 계층은 소수 승자와 마진 압박, 애플리케이션은 수익화 검증 필요, 신뢰 인프라는 아직 초기 — 전부 다릅니다. “AI가 버블이냐”는 질문 자체가 너무 거칩니다.

조정은 옵니다. 그리고 조정 후에도 살아남는 건 AI라는 단어가 붙은 회사가 아니라, 실제 고객의 문제를 풀고 반복 가능한 매출과 검증 가능한 사용량을 가진 회사입니다.

Q14. 3~5년, 가장 크게 성장할 분야와 가장 과대평가된 부분은?

“성장은 AI Agent Economy — Identity, Trust, Payment입니다. 과대평가는 ‘AI에 토큰만 붙이면 Web3가 된다’는 발상입니다.”

하나를 꼽으라면 AI Agent Economy입니다.

AI가 콘텐츠 생성을 넘어 실제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순간, 반드시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Identity — 이 AI는 누구인가

   Trust — 이 AI의 행동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Payment — 이 AI는 어떻게 가치를 주고받는가

저는 이 세 가지가 AI×Web3의 핵심 인프라가 될 것으로 봅니다.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여기가 유일하게 “블록체인 없으면 구조적으로 안 되는” 영역입니다. 둘째, 수요가 기계에서 나옵니다. 지금까지 Web3의 최대 난관은 사용자 교육이었습니다. 지갑을 설명하고 시드 문구를 설명해야 했죠. 기계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스펙만 맞으면 씁니다. Web3가 처음으로 UX 문제에서 해방되는 영역입니다. 셋째, 표준과 구현체가 이미 나와 실측 데이터가 쌓이는 단계입니다.

반대로 과대평가된 것은 “AI에 블록체인을 붙이기만 하면 혁신이 된다”는 접근입니다. AI 서비스에 토큰 하나 붙인다고 Web3가 되지 않습니다. 사용자에게 실제로 소유권이 필요한지, 거래의 검증이 필요한지, 탈중앙화가 실질 가치가 있는지부터 물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를 꼽겠습니다. 탈중앙 AI 학습(대규모 학습은 통신 지연과 대역폭이 지배해 물리적으로 분산에 안 맞습니다), 제품보다 토큰이 먼저 나온 ‘AI 토큰’, 그리고 에이전트 평판 점수에 대한 과신입니다.

블록체인은 AI를 대신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AI가 만들어낸 가치와 행동을 신뢰 가능한 경제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기술이어야 합니다.

Q15.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

“AI가 일하고, 블록체인이 증명하고, 스테이블코인이 결제한다. 앞으로 3~5년이 이 문장이 현실이 되는지를 결정합니다.”

저는 앞으로의 시대를 그냥 “AI 시대”라고 부르기보다 “AI가 경제의 새로운 주체가 되는 시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AI는 노동을 담당하고, 블록체인은 그 행동의 신원과 기록을 증명하고, 스테이블코인은 그 가치를 이동시킵니다. 중요한 건 셋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이 셋이 맞물린 경제 시스템을 누가 먼저 설계하느냐입니다.

창업가들께는 — “AI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한 단계 나아가 “AI가 일하는 조직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물으십시오. 그리고 서사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사용을 만드십시오. 지난 몇 년간 이 업계는 좋은 이야기를 파는 데 익숙했습니다. 그게 안 통하는 국면이 옵니다.

투자자들께는 — “AI”나 “Web3”라는 키워드가 아니라 실제 데이터, 고객, 거래, 생산성, 현금흐름을 보십시오. 그리고 신뢰 인프라 계층에는 인내 자본이 필요합니다. 이 계층은 화려하지 않고, 눈에 안 보이고, 늦게 터집니다. 인터넷에서 TCP/IP나 SSL이 그랬듯이요. 하지만 없으면 그 위에 아무것도 못 올립니다.

개인에게는 — 도구를 쓰는 사람에서 일을 설계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으로 옮겨가십시오. 도구는 6개월마다 바뀝니다. 지금 익힌 사용법은 곧 낡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정의하고, 검증하고, 책임지는 능력은 낡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분명히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AI, 제조, 콘텐츠, 금융, 게임, 플랫폼이라는 강점을 동시에 가진 흔치 않은 나라입니다. 여기에 Web3의 신뢰 인프라를 결합하면, 한국은 단순한 소비 시장이 아니라 새로운 디지털 경제의 실험장이자 표준을 만드는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미래의 핵심 문장은 이것입니다.

“AI가 일하고, 블록체인이 증명하고, 스테이블코인이 결제한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져도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이걸 믿어도 됩니까?” AI가 지능을 흔하게 만들수록, 신뢰는 더 희소해집니다. 저희가 신뢰(Trust)를 연결(Connect)해서 섬긴다(Serve)는 말을 회사 이름에 담은 이유입니다. 감사합니다.

▲ 윤석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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