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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5일 화요일 03:54

어른보다 나은 아이의 주식계좌가 말해주는 것

구선 기자kooblock@daum.net

미성년 주주 수는 줄었지만 보유액은 7.3조원…억대 주식 보유자는 1년 새 두 배

어른보다 나은 아이의 주식계좌가 말해주는 것

미성년자 명의로 1억원 넘는 주식을 보유한 사람이 5400명에 달한다는 통계는 꽤 강한 인상을 남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2800명이던 숫자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전체 미성년 주주 수는 오히려 줄었는데, 이들이 보유한 주식 평가액은 4조6501억원에서 7조3113억원으로 57% 넘게 증가했다.

숫자만 보면 ‘어린이 투자 열풍’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1000만원 미만을 보유한 미성년자는 줄었고, 5000만원 이상을 가진 미성년자는 크게 늘었다. 특히 1억원 이상 보유자는 92.9% 증가했다.

투자 저변이 넓어졌다기보다 이미 상당한 자산을 가진 미성년 계좌 쪽으로 규모가 더 커졌다고 보는 편이 맞다.

물론 이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과거에는 자녀에게 적금통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S&P500이나 나스닥100을 추종하는 ETF를 사주는 부모가 많아졌다.

장기투자를 통해 복리의 효과를 경험하게 하고, 자녀에게 금융교육을 일찍 시작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변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미성년자의 주식계좌는 본질적으로 ‘아이의 투자’라기보다 ‘부모의 자산관리’에 가깝다.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기업 실적과 밸류에이션을 따져 삼성전자와 미국 ETF를 골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상당수는 부모가 자녀 명의로 자금을 이전하고 대신 운용하는 구조다.

그래서 미성년 주식 자산 증가를 단순히 ‘주식투자가 생활화됐다’는 현상으로만 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자산 이전의 속도와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10세 미만 주식 보유자는 2만명 넘게 줄었는데 보유금액은 47% 증가했다. 계좌 수보다 계좌 안의 돈이 더 빠르게 불어난 것이다.

물론 지난해 증시 상승에 따른 평가이익이 포함됐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그래도 고액 보유층을 중심으로 자산이 집중되는 흐름까지 지워지지는 않는다.

이는 결국 자산 격차의 출발점이 더 빨라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 첫 주식을 사고, 누군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부모가 만들어준 억대 포트폴리오를 갖는다. 두 사람 모두 ‘주식투자자’라고 부를 수 있지만 출발선은 전혀 다르다.

이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벌어질 수 있다. 주식은 시간이 길수록 복리 효과가 커지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열 살 때부터 1억원을 투자한 사람과 서른 살이 돼서야 1000만원을 모아 투자를 시작한 사람 사이에는 단순히 9000만원 이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 사이의 ‘시간’ 자체가 자산이 된다.

그렇다고 부모가 자녀에게 주식을 사주는 행위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합법적으로 증여세를 신고하고 장기적인 자산 형성을 돕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오히려 금융자산을 일찍 접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사회적으로는 다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미성년자 자산이 빠르게 늘어나는 과정에서 증여가 제대로 신고되고 있는지, 부모의 자금이 자녀 명의 계좌로 이동하는 과정에 사각지대는 없는지, 세대 간 자산 이전이 조세 체계 안에서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무엇보다 이 통계는 ‘요즘 아이들도 주식한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넘어선다.

미성년 주식계좌 7조3000억원은 우리 사회에서 자산 형성의 출발 시점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부모의 경제력은 교육비와 주거 환경뿐 아니라 자녀의 투자 시작 시점까지 결정한다.

아이에게 주식을 물려주는 시대가 된 것은 분명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어떤 종목을 사줄 것인가’만이 아니다.

아이의 이름으로 쌓이는 자산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출발선의 차이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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